의사 말만 잘 들었는데, 왜 나는 더 아팠을까?

끝없는 통증 속에서 발견한 불편한 진실

by 키슬

나는 원래 누구보다 의사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의사가 약 먹으라면 약 먹고 3일 뒤에 또 오라고 하면 또 갔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에 대해 단 0.1 나노그램의 의심도 품은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호리호리하고 몸이 약했던 아이인지라 이런저런 약들을 달고 살았다. 병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건만 30대 초반까지 내 몸은 전혀 건강해지지 않았다. ’난 왜 계속 아플까?’라는 의문에 대한 내 답은 ‘내가 그냥 그렇게 태어났나 보다’였다. 유전 탓을 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의사가 잘못되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는 권위 있는 존재였고, 내게 권위와 전문성은 동의어였다.


2015년의 어느 날, 문득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는데 난 왜 아플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평생 약을 먹어 왔는데도 계속 아프다는 건 약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와우, 그걸 무려 31년 만에 깨달은 것이다!


그 무렵의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칼로리를 제한해서 먹거나 1일 1식을 하고 작업실 근처 한강변을 따라 매일 한 시간씩 러닝을 하는데도 두둑이 붙은 뱃살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설사가 너무 심해 지사제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정신적으로도 무척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두통약, 급성 천식 스프레이는 생필품이었다


‘왜 아픈가’를 주제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찾아낸 것들은 뻔했다. 결국 아프면 병원 가서 의사한테 물어보라는 것이다. 답답해하던 도중,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뭔가가 머리에 떠올랐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이 오고, 비타민 C가 부족하면 괴혈병이 오고, 그런 것들 말이다. 오호. 영양분이 부족하면 사람이 아파진다는 말이잖아? 답은 먹는 것에 있을 수 있겠다!


그렇게 질병과 영양을 키워드로 다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뻔한 내용들 사이에서 한 미친 소리를 발견했다. 사람이 아픈 건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고 지방을 너무 적게 먹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뱃살부터 쏙 들어간다는 주장에 나는 혀를 찼다. ‘사람이 다이어트에 미치면 저런 소리까지 할 수 있구나.‘


하지만 난 갈 곳이 없었다. 건강과 관련해 내가 아는 최선은 다 해본 상태였다. 매일 운동하고, 음식을 적게 먹고, 의사를 찾아가는 일 말이다. 그리하여 그 미친 소리를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양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꼬박 1년을 공부하는 동안 나는 우리 몸에 대해 꽤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혈당이 급격하게 올랐다 떨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칼로리와 무관하게 무럭무럭 뱃살이 찔 수 있다는 것, 그러다 2형 당뇨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고혈당으로 인해 발생한 염증이 온갖 통증과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 동물성 식품의 부족이 영양 부족으로 이어져 몸이 제 기능을 못하고 이런저런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 등. 전부 내 이야기였다. 내가 왜 아픈지, 왜 별로 먹는 것도 없는데 마른 비만인지.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고 우울한지. 퍼즐이 전부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이 식단을 안 해볼 이유가 없었다. 2016년 7월 30일, 그 ‘미친 식단’을 시작했다.


몇 주가 흐르는 동안 내 식단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적혔다.

-머리가 안 아프다. 신기하다.

-여기저기 쑤시는 느낌이 없다. 신기하다.

-급변이 줄었다. 이제 막히는 도로에서 시내버스 탈 수 있음

-배고플 일이 없는데 살이 빠진다니?

-폭식 욕구가 사라졌다.


이후로, 내게서 사라진 증상들만 나열해도 팔만대장경을 쓸 수 있을 지경이었다. 다낭성 난소증, 과민성 대장증후군, 각종 알레르기, 피부 염증, 질염, 외이도염 등 삶의 질을 뚝뚝 떨어뜨리는 질병들이 손쉽게 사라졌다. 10년을 괴롭히던 불면증도 사라졌다. 가장 신기한 건 천식 발작이 줄어든 것이었다. 병원도, 의사도, 약도 없이 말이다.


배신감이 들었다. 부작용을 감수하며 그렇게 많은 약들을 매일 한 주먹씩 먹게 만든 의사들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것도 온전히 그들 탓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들도 그냥 배운 대로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약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거쳐 SNS와 책, 강의를 통해 포화지방과 소금을 피하지 말고 탄수화물과 식용유를 줄이라고 말하는 나는 여전히 손가락질을 받는다. 2025년 접어들어 9월까지 그 흔한 열감기 한 번을 안 걸린 내 아들을 보며 ‘부모 잘못 만나 학대받는 아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전문가도 아닌 게 꼴 보기 싫게 나댄다’는 사람들은 ‘권위’가 언제나 ‘전문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전세게 수많은 사람의 경험이 증명하고 과학이 명백히 밝혀낸 영양학적 진실을 받아들이면 더 많은 사람이 만성 질병과 통증에서 해방되고 아이들도 크게 아프지 않고 클 수 있다. 음식을 바꾸고 질병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특히 ‘우주맘님 만나고 아이가 아토피가 없어졌어요’ ‘10번 아플 거 요즘은 한두 번만 아파요’ ‘항생제 먹일 일이 없어요’ 같이 아이들의 건강이 개선되는 사례들을 접하면 까짓 거 욕 좀 먹으면 어떠냐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잘못된 영양 상식을 바로잡는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10년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해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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