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다시 Jan 27. 2023

겸손한 뱁새

'창작과 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공부의 시대' 강연에서 유시민 작가에게 한 청중이 질문했다.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비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유시민 작가가 말했다.

-여행 좋아하세요?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 지구의 모든 도시에 다 가봐야 되는 건가요?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잖아요? (...) 지구의 모든 도시를 다 가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아요. 그래서 '인생은 너무 짧은 여행'이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여행할 시간이 너무 짧다면 어디를 가시겠어요? 가고 싶은 곳을 원하는 방법으로 가는 게 정답입니다. 그러니 가보고 싶은 곳을 되도록 많이 가는 것, 그 정도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선이겠죠. 무조건 많은 도시를 다니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다들 어리석다고 할 것 입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가보셨나요? (...) 저 많은 책들을 다 읽고 말겠다는 결심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이 너무 짧아서 다 읽은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요. 정답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겁니다.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것이 정답인 것과 똑같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되도록 많이 읽는 것, 그 정도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선입니다.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맛'입니다. 한권이라도 음미하면서 읽고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 없이 100권을 읽는 것보다 낫습니다. 다독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게 어리석은 것처럼, 속독하력 애쓰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좋은 책은 천천히 아껴가면서 읽어야지요. 맛난 음식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씹어 먹는 것처럼요.

-책을 많이 읽는 비법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권하지 않겠습니다. 사는 데도 공부하는 데도, 그런 비법은 필요없으니까 말입니다.

<공감필법 中, 유시민>



다독해야한다는 다급함이 생겼다. 예전에 없던 마음이다. 생각해보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마음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블로그에 올려서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다. 유명인들이 쓴 책,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인문, 고전 등 유명하다는 책을 읽고 사진 찍어 몇 자라도 올리고 싶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가면 다리 찢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나는 뱁새였다.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도 있다. 나는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다독의 욕심이 없었던 옛날엔 오히려 독서 감상문이 잘 써졌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책을 천천히 씹어 먹었다. 깨달음도 있었고 지혜가 샘 솟았다. 깨달음과 지혜를 두서 없이 적어나갔다. 글을 잘 써야한다는 부담도 없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적었다. 지금 읽어보면 '나도 그땐 괜찮았었네' 생각이 든다.

집에 책이 많다. 다독의 욕심으로 예전에 읽었던 책은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오늘 책장을 정리하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책을 봤다. 2,3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우리시대 스승이 삶의 지혜를 말해주는 내용이었다.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을테고 밑줄은 어느 노트나 블로그 글로 옮겨졌을 것이다. 

 너무 좋은 여행지는 "나 나중에 여기 또다시 올거야!" 라고 외친다. 독서도 그래야겠다. 다독의 욕심은 버리고, 읽고 싶은 책을 또다시 읽어야겠다. 또다시 또다시. 수많은 책 광고와 인플루언서들의 책 소개에 현혹되지 말아야지! 

난 겸손한 뱁새이다.


작가의 이전글 홀로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