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남매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쉽지 않다. 큰오빠, 작은오빠, 남동생네 가족은 명절을 지내고 당일 아침에 처가로 간다. 언니와 우리 가족은 시댁에서 명절을 지내고 오후에 친정으로 온다. 사정이 이러하니 명절에 부모님 댁에서 오남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가 없었다. 오남매는 서울, 경기, 충북, 대전, 광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직장이나 가정 사정으로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에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힘들었다. 특히 코로나 3년 동안 만남은 거의 없었다.
코로나에서 자유로워진 후 처음 맞는 명절이 이번 설이었다. 비켜지나가더라도 얼굴을 다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은오빠네 가족은 설 일주일 전에 부모님 댁에 다녀갔다. 올케는 오지 않고 동생만 왔다 갔다. 언니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한 끼 식사를 겨우 같이했고 언니네는 급하게 대전으로 떠났다. 우리 가족만 부모님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사는 게 뭔지 이리도 여유가 없단 말인가?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한두 시간만이라도 기다렸다 서로 안부 묻고 얼굴만이라도 보고 가면 좋겠다. 장성한 조카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겠다.
오남매 중 넷째인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엄마 집에서 살았지만 형제들과 얽힌 기억이 거의 없다. 띠동갑 큰오빠는 책을 많이 읽었고 내가 초등학교 때 결혼해서 집을 나갔다. 기타치고 노래를 불렀던 작은오빠도 큰오빠 결혼과 비슷한 시기에 대도시로 대학 진학을 했다. 언니는 나랑 다섯 살 차이가 났는데 우린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그나마 나는 남동생과 가장 친했는데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대도시로 진학해서 집을 떠나버렸다.
집안 행사나 가족 생일 때도 우리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축하하고 웃음꽃을 피웠던 기억도 없다. 나만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 형제들은 결혼해서 꾸려진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배우자를 신뢰하며 자녀의 교육과 좋은학교 진학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원가정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매우 건강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난 자주 아쉽고 속상하다.
아무리 자신의 가정이 소중하다지만 부모님과 형제자매도 귀한 인연인데 이를 제쳐놓고 무심히 산다는 말인가? 아마 나만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난 남편과 불화가 잦은 편이라 내 가정의 일로 편치 않을 때면 말할 상대가 필요했다. 남에게 내 속을 다 드러낼 순 없는 일이라 형제자매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남보다 더 먼 곳에 있었다.
다들 무심한 성격이긴 하지만 비정상의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건전한 사람들이다. 지푸라기 한 자락이라도 잡길 원하는 내가 문제이다. 나도 형제들처럼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정에서 안식과 위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만 아쉬워하자. 형제자매와 가정을 축복해 주자. 모두 건강하고 무사해서 무소식이 희소식일 때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나도 원가정에서 홀로서기를 확실히 하자! 나도 나 사는 것에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