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본 영상이다. 어느 습지에서 새끼 사슴이 헤엄치고 있다. 곧 어미 사슴이 다급히 새끼 사슴 쪽으로 뛰어든다. 새끼 사슴은 여전히 가던 길로 간다. 반면, 어미 사슴은 처음 있던 곳에서 머문다. 잠시 후 엄마 사슴 뒤에서 악어 몇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다가온다. 어미 사슴은 새끼 사슴의 희생을 막았다. 대신 자신의 목숨은 잃었다.
동물 어미의 새끼에 대한 모성 본능이 이러한데, 인간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더 고귀할까? 엄마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성애도 만들어진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쉽고 단순하다면 저 어미 사슴의 모성애 같은 사랑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마이다. 24년 동안 엄마로 만들어지고 있다. 엄마가 되는 과정엔 고통이 꼭 필요하다. 아픈 만큼 자녀에 대한 내 사랑도 깊어지고 있다.
하마터면 엄마가 못될 뻔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하혈이 있었다. 부모를 떠나 객지에서 시작한 삶에서 처음 맞은 고통이었다. 하혈의 원인은 자궁 외 임신이었고, 자궁 외 임신은 자궁내막종 때문이었다. 멀리 계신 엄마께 소식을 알렸다. 강남차병원을 소개받아 자궁내막종을 검사하러 갔다. 수술을 해야 하며 수술 결과에 따라 임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에 나를 맡기고 자궁내막종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몇 개월 동안의 호르몬 치료 후에 임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한 첫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엄마가 되기 위한 두 번째 과정은 임신 중에 일어났다. 태아 건강 정기검진일이었다. 그날은 초음파 검사를 매우 오랫동안 했다. 의사는 신중하게 초음파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심상치 않음을 예감하며 초음파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 앞에 앉았다. 태아의 신장이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태아의 오른쪽 신장 한쪽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는 신장 한쪽만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26살 어린 엄마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아기가 태어난 날까지 7개월 동안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나의 엄마와 함께.
태중의 아기와 나는 고된 직장생활을 함께 했다. 퇴근 후엔 어려운 시동생, 무심한 남편과 함께 가정생활을 했다.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태중 아기와 나는 두려움과 설움을 함께 겪었다. 세상일이 고달플수록 나와 태아의 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로 예정된 며칠 후, 드디어 뱃속에서는 아기가 나올 태동이 느껴졌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일산에서 강남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초조해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아기와 난 출산 대기실에 곧장 수감되었다. 병원은 감옥과도 같았다. 산모의 몸을 옆으로 뒤척일 공간도 없이 좁은 침대, 침대는 철제로 미동에도 삐그덕거렸다. 또 침대 높이는 얼마나 높던지 실수로 떨어졌다간 태아나 임부나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한 침대에 한 임부만 두고 사방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병원 공기는 매우 차서 출산의 두려움까지 겹쳐 벌벌 떨게 만들었다. 아기의 태동으로 배는 아파오는데 간호사나 의사는 어디 있는지 볼 수도 없었다. 난 출산의 고통과 두려움으로 자연스럽게 비명을 질렀고 간호사가 빼꼼히 내다봤다. 이때다 싶어서 “손 좀 잡아주세요”라 외쳤지만 간호사는 횅하니 가버렸다. 참으로 서러운 출산의 때였다. 이후 일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소리를 질렀을 테고 간호사는 출산실로 데려갔을 것이다. 힘을 주라고 했을 것이고 난 힘을 주어 드디어 내 일부인 아기를 세상에 나게 했을 것이다. 아기의 첫 모습만 아련히 기억이 난다. 병원에서의 이박삼일의 고통이 끝났다.
아기는 아들이다. 아들은 허약했고 크고 작은 병들을 달고 살았다. 허약한 아기가 건강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나의 기도는 24년 동안 하루도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순탄하지 않은 아이와 나의 인생길이었지만 ‘내 인생 최고의 순간-자녀를 위한 기도’ 덕분에 아들은 건강을 유지하며 잘살고 있다. 어머니로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여자가 자신이 비로소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어진 어머니는 심신이 건강하고 지혜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어머니가 되려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자신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