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1
그 길은 경의선 철도를 따라났다. 기차는 요란한 소리뿐 모습은 숲 뒤에 숨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 길 끝은 무엇일까?'
숲길따라 팔을 흔들며 큰 보폭으로 걷는 이들이 보였다. 나도 언젠가 그들 대열에 끼어 그길 끝까지 걷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자동차로 출근하기를 과감히 멈췄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봄, 타일러의 '두번 째 지구는 없다' 책이 나를 바꿨다. 기후위기 해결에 나비의 작은 날개짓처럼 나도 동참하기로 했고 자가 운전 대신 '걷기'를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어서 출근을 시작했다. 나의 길은 비록 일산역에서 풍산역으로 끝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 높이 자란 우거진 나무가 주는 숙연함에 나는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고, 진한 푸르름은 세속에 찌든 영혼을 정화시켰으며, 나무가 밤새 생산한 피톤치드는 내 육신의 찌꺼기까지 뱉어내게 만들었다. 나무와 함께 걷는 출근길은 외롭지 않았고 하루를 살 힘을 주었다. 오늘도 난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어서 출근했다.
'이 길은 나의 길이야.'
나의 길2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새 집은 내가 다니던 학교와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부모님은 이사할 때 어린 나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매일 이른 아침마다 집을 나서 뛰다시피 학교를 걸어 다녔다. 뛰다시피 걸었을 때 20분, 보통 걸음으론 30분이 넘는 거리였다. 나의 빠른 걸음은 틀림없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학교 갈 때 걷는 길과 집에 갈 때 걷는 길이 달랐다. 등굣길에는 큰 차도를 따라 난 길로 걸어 다녔고, 하굣길에는 골목길로 걸어 다녔다. 등굣길은 혼자였지만, 하굣길의 일부분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나의 길을 함께 걷었던 내 친구 혜심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1년 내내 축구공 몇 개가 매달려있던 학교 옆 문구점 아저씨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의 길3
내가 다닌 중학교는 신설 학교였다.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 정류장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따라-산이었지만 산을 밀어내고 학교와 교회 등을 지었던 곳- 학교까지 걸었다, 아니 올랐다. 오른 어깨에 책과 노트로 가득 찬 책가방을 멨고 왼 어깨는 아래로 낮추고 학교까지 열심히 올랐다. 좌우 비대칭 내 몸매는 틀림없이 이때부터 비롯된 것 같다. 등교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걸음은 빨라졌고 심지어는 산길을 달려 오르기까지 했던 여중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다리는 새다리마냥 가늘었고 늘 잔병치레에 시달렸던 여린 내가, 중학교 때부턴 아프단 소리 한 번도 안하고 더구나 코끼리 다리가 되어 중학교를 졸업했다. 나의 건강 도우미는 ‘나의 길’, 비 오면 진흙탕 범벅된 중학교 통학로 덕분이리라.
나의 길4
삼십 대 중반에 암이 찾아왔다. 눈앞이 깜깜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과 딸에게 편지를 받았다. 엄마의 수술이 잘 되어 건강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술은 잘 됐고, 암이 재발되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해야했다. 내가 찾은 곳은 ‘정발산’이었다. 정발산은 ‘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해발 87미터의 작은 언덕이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휴직을 했고 매일 정발산을 오르내렸다. 처음 정발산을 올랐을 땐 힘에 부쳤지만 얼마 후엔 오르내림이 거뜬했고 뛰기도 했다. 작은 산이지만 큰 산 못지않은 갖은 종류의 큰 나무가 우거졌고 온갖 산새의 지저귐에 명상이 절로 되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오로지 자연 자체로 존재하는 정발산은 나의 ‘힐링 스페이스’가 되었다. 나만의 걷기 코스가 생겼고 ‘나의 길’-치유의 길이 되었다. 정발산 나의 길 덕분에 난 건강하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요즘도 행여나 건강이 나빠졌다 느끼면 정발산의 든든한 나의 길을 떠올리며 건강회복을 자신하곤 한다.
나의 길5
태풍이 지나고 나면 그곳의 멋진 나무들은 무사한지 걱정됐다. 태풍이 우리 지역을 빠져나갔단 소식을 듣자마자 난 곧장 그곳을 찾았다. 잔가지들만 떨어져 있고 대부분의 나무가 무사했고 공원은 늘 그렇듯 고요했다. 폭우로 홍수가 났었다. 물이 얼마나 불었을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 세찬 비를 뚫고 그곳을 찾았다. 물은 길을 덮었고 공원 전체가 물안개 속에 빠진 것 같았다. 마치 미지의 세계와 같이 더 매력이 있었다. 나만의 길이 있는 곳, 바로 호수공원이다. 호수공원에 ‘나의 길’이 생긴 것은 코로나 덕분이었다. 살아온 많은 것들이 급격히 변화된 암울한 시절 호수공원은 늘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호수공원은 관계가 단절되고 불안했던 코로나 삼 년 동안 나의 벗, 나의 길이 돼 줬다.
나의 길6
인생 어느 시절에나 ‘길’은 있었다. 내 발자국이 닿아 길이 되어 준 곳, 내가 밟아 길을 만든 곳, 나의 길. 길을 걸었을 때 고통의 끝은 보였고 길은 새로운 세상으로 날 인도했다. 길은 막막함의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었고 기댈 곳 없을 때 든든한 어깨가 되어 주었다. 길은 몸과 마음에 건강을 선사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간의 삶에서 내겐 또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펼쳐질 나의 길을 환영하고 난 또다시 그 길을 그저 묵묵히 걸을 것이다. 인생에 펼쳐지는 많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의 끝인 종착지에 도착하겠지. 그곳도 분명 ‘나의 길’처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며 ‘그래도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