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이 엄마는 아니었지만

육아에세이 - 키우며 자라나기

by 모지란

매 학년 첫 수업 시간, 담임 선생님은 생활기록부 첫 장을 나눠주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를 거침없이 써내려가다 '장래희망' 란에서 멈춘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아 매 해 다른 직업을 적곤했다. 그 이름은 왠지 마법 주문 같아서 어른이 되어 그 직업을 가지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시로 바뀌던 장래희망과 달리 나는 살아있는동안 엄마를 가장 사랑했다.(아빠도 사랑합니다.) 큰 병원에서 일했던 엄마는 결혼하며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시절엔 당연한 일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우리 엄마는 최고의 전업주부였다. 형제가 셋이나 더 있는데도 집은 언제나 깨끗했고, 놀러온 친구들은 엄마의 음식을 늘 칭찬했다. 아침마다 딸 넷의 머리를 예쁘게 매만지는 일을 거른 적도 없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땐 곁에 엄마가 같이 있었다. 내가 고3이 된 해 엄마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덕에 지옥같은 입시를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엄마에게 비밀 이야기가 단 한가지도 없었다.


나는 정말로 끝 없이 엄마를 사랑했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싶은 적은 없었다. 공부에 욕심을 낼 수록 결혼이나 육아와 같은 일은, 좋은 직업 다음 다음 다음- 순위가 되었다. 대학에 가서는 여자 동기들 사이에 직업적인 꿈보다 결혼을 우선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여태 쌓아놓은 것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엄마로 사는 삶이 행복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의 그녀도 가끔은, 멋진 직업을 가지고 '엄마가 아닌채로' 사는 인생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은 나를 키우기 위해 엄마가 포기한 삶이었다.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려면 무언가 되어야만 했고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이 사회에서, 그 무언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의 희생에 보답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 엄마가 되지 않기(혹은 늦추기)' 였다. 엄마가 되면 그녀가 그랬듯 그간의 노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나는 장래희망에 대한 욕심이 참 많았다. 친구들은 내기를 하면 내가 가장 늦게 시집을 간다는 데에 걸었다. 그네들의 기대와 반대로 서른을 맞이하기 전에 나는 아내와 엄마라는 타이틀을 모두 얻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아이는 철저한 계획을 뚫고(?) 기적처럼 왔다.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내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그만둔 뒤 합격해두었던 대학원 입학이 일년 넘게 미뤄졌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이 심해 항상 몸이 처져있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밤마다 조급함에 뒤척였다. 숨 가쁘게 뛰어왔던 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좌절시켰다. 무언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숱한 날들이 억울했다. '그 많던 여대생들은 어디갔'느냐는 시구의 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지인들의 안부조차 견디기 힘들었다. 아이를 낳았으니 축하한다는 말이 먼저 나왔고, 공부든 일이든 언제 복귀할 것이냐는 질문이 그 다음이었다. 나의 현재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집에서 쉬는 기간이었다. 조금 더 가는 이들은 역시 공부해도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굳이 거들어줄 필요 없는 걱정도 해주었다. 경단녀니, 전업맘이니하는 시쳇말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았다. 사람들에게서 꽁꽁 숨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전업주부&육아의 삶이 펼쳐졌다. 집안일은 말도 안되게 많더라. 빨래는,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는 것 외에 세탁물을 분류하고, 세제를 계량하고, 종류대로 세탁한 뒤 한 벌씩 털어 말리는 것을 통틀어 붙인 이름이었다. 아기 빨래는 찝찝하니 당연히 손빨래. 도와주는 가족들이 없었다면 문자 그대로 손목을 잃었을 뻔 했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집안일에 들어있는 세부과정들을 하나, 하나 해나가다 보면 24시간이 모자랐다. 거기에 육아가 덧붙여진 '전업 엄마'로 레벨업하니 계절이 어찌 지나는지 모를 정도다. 시간은 쏜살같이 달리고 나는 손에 접시나 아기 옷가지를 가득 들고 그를 쫓아가는 형국이다. 세상에 모든 엄마들이 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뜨거운 물에 젖병을 소독하다 손을 데었다. 상처가 나지는 않았지만 주저앉아 울었다. 나를 이렇게 키워준 엄마의 노고를 충분히 존경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의 존경과 사랑은 그 앞에 턱 없이 부족한 것들이었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죄송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은 느즈막히 엄마가 되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도 함께 죄송해졌다. 내 속에는 아이를 키우는 전업에 대한 평가절하와 우리 엄마에 대한 자부심이 뒤엉켜있었다. 무엇도 선택하지 못해서 무엇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사람 역할을 하는 자신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때 그 때 닥치는 일들에 나를 맡겨버렸던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나를 안아준 것도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 없이 살 수 없다. 엄마는 나를 다독여주었고 나는 미워했던 나 자신을 안아주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고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복학을 앞두고 7개월 된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 중이다. 아이가 없는 시간은 여유럽지만 공허하다. 엄마에게 "태빈과 같이 있으면 힘들고 떨어져 있으면 심심하다"는 말을 많이한다. 나의 엄마는 내게 '엄마가 다 되었다고' 답한다. 빗물에 옷이 젖어 들 듯 나는 차근차근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막상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아이와 집안살림, 그리고 남편이 걱정된다.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 생초보 엄마이면서도 괜히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를 느낄까봐, 또, 하면 티도 안나면서 안하면 완전 개판되는 집안....도... 답은 없다. 하지만 걱정끝에 따라오는 묘한 안도감이 있다. 나는 꽤 엄마다워졌다. 엄마가 되어서만 알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나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 그리고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나의 장래희망은 '좋은 엄마'이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를 매우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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