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견디게 하는 것들
서른은 ‘서투른 어른’의 줄임말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나이에서 10살을 깎아야 진짜 나이라는 말이 있다. 만 나이가 일반화되어 2살정도는 기본 깎아준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줄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있는 사람은 45.6세이다. 내가 태어난 80년대 중위연령이 21.8세였던 것에 비교하면 국가적으로 나이를 많이 먹었다. 기대수명도 100세를 바라본다. 다들 독립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결혼과 임신은 선택이 되었다. 살아가는 모양새가 사람마다 제 각각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평등하게 하루를 살고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나는 남들보다 인생의 어려운 결정을 서두른 덕에 서른즈음을 마음 편히 지났던 것 같다. 낯선 교실에서 친구를 사귀고 교복을 바꿔입던 시절, 새 일과 동료, 가족 구성원의 탄생과 취미를 만드는 시절을 지나 이제 정말로 어른이다. 더구나 전반전이 아닌 후반전은 새로운 이벤트가 갈수록 적어지는 대신, 갖고있는 무언가들을 잃는다.
상실은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처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꼭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일로 쓰는 글에 익숙해져서 취미로 쓰는 글을 멈추게 되었다. 운전면허를 딴 뒤에는 산책의 즐거움을 잊게 되었다. 침구를 바꾸고 잠버릇이 사라졌는데 내편은 그것이 섭섭하다 한다. 나는 잠버릇이 있는지도 몰랐다가, 그가 잠자는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당혹스러웠다. 잃는 관계도 있다. 유학 간 동창은 10년이 지나자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인터넷이 있어 시차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서글펐다.
얼마 전에 만난 다른 친구에게 서운함을 표했다. 누군가에게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 했었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했기 때문이다. 내가 잃을 것보다, 이미 잃은 것이 더 중요해지니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상실이 만들어낸 역설이었다. 최근에는 영영 연락할 수 없는 사람이 생겼다. 친구가 지구 반대편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나는 글을 쓰고 산책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자면서 뒤척이는 버릇도 생겼다.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어 무언가 해야만 했다. 빈소로 가는 길에 메모장을 켰다.
친구를 잃으러 가는길
매섭다던 올 겨울 날씨에
대전은 영상이다
얼굴이 젖어도 춥지말라고
너가 마지막까지 배려를 다한다
많이 살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리 재촉하며 돌아갔는지
스스로는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을
너 대신 우리 모두 경험하며, 운다
마음으로 눈으로 목소리로
억울하다는 말이 처음으로 옷을 입고
이상한 원망 같은 것이 마음에 피어나는
오늘은 그런 날
너는 매번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주문 같아서
더는 아무 말도 물어보질 못했다
연말연초에 겨우 얼굴 한 번을 보고
효력도 없는 기원이나 했다 새해에는
이 모든 그늘이 사라졌으면
간절한 내가 참 무안하게도
해가 비추는 날은 오늘이다
네가 떠나는 날이나 퍽 따뜻한
거지 같은 온 우주
성탄의 설렘이 남은 역전에서 나는
새빨간 컵홀더를 들고 너를 생각한다
친구를 잃으러 가는 길
친구를 잃고 오는 길
요절(夭折)은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절’은 “꺾이고 부러진다, 죽는다”, 그리고 “값을 깎는다”는 뜻도 함께 갖는다. 문자 그대로라면, 젊음은 귀하고 죽음이 그 가치를 떨어뜨린다. 내 친구는 서른이 되기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성탄절에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나는 기차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얼마 버티지 못했던 직장생활도 출장이 즐거워서 그나마 좀 더 견뎠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부고로 시작된 여행은 끝도 좋지 않았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커피를 세 번이나 샀다. 마지막 잔은 옷에 쏟았다. 그 날은 일로 복귀하지 못하고 집 앞 곰탕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소주잔을 두 개 주셨다. 맞은 편에 놓인 잔에 몇 번이고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을까?
이토록 가벼운 삶이 왜 날아가지도 못하고 늘 묶여있는지. 얼마 전 내 편과 ‘체인쏘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았다. 인간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관 안에서, 피의 악마인 ‘파워’는 잡아먹으려던 새끼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고양이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이렇게 말한다.
“목숨의 무게는 모두 같다. 모두 똑같이 가볍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에 우리는 서울에서 망년회를 했다. 다들 그럭저럭 살고 있어서 행복했다. 캐롤이 나오는 주점에서 시끄럽게 떠들다가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내 친구는 내 아들을 갖다주라고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다음 날 술이 깨서 냉동고를 열고 껄껄 웃었다. 초등학생에게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니, 결국 이건 내 차지네. 기분이 좋았다. 내 친구가 장지로 가는 날.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진한 녹차향이 친구와 닮았다. 나는 그를 떠올릴 때 새파란 잔디를 생각한다. 풀 냄새가 여름날을 채우는 것 같은 청춘이었다. 언젠가 가볍게 흩어져 갈 우리의 삶. 우리는 영원히 살 것 같이 젊은 오늘에 천착하며 지낸다. 손톱이 자라고 나는 하루하루 늙는다. 나의 친구는 더 이상 늙지 않는다. 캐롤은 끝났고 그의 건강과 평안을 빌었던 새해가 들이닥쳤다.
49제를 앞두고 친구의 가족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은 추모제를 연다고 했다. 친구의 누나는 그를 담은 사진이 있으면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내 친구는 천국에 있을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차분한 누나의 목소리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의 연락도 있었다. 나는 49제에 가서 그의 영정사진을 마주할 용기가 없노라고 휴대폰 뒤에 숨어 말했다. 우리는 서로 숨을 한 번 고르고 안부를 물었다. 직장생활의 어려움과 잘 풀리지 않는 사업에 관하여 푸념했다. 그러다 이내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어 보자고 힘없이 다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죽음은 우리가 삶에 솔직하도록 만든다. 아프고 힘들어도 아직 삶을 가졌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끼게 한다.
나는 가끔 그를 생각할 것이다. 스마트폰 스케줄러에 가득 차 있는 일정 사이, 사이에 친구의 웃음을 상기할 것이다. 서류를 챙겨 기차에 오를 때, 커피를 쏟았을 때의 난처함과 눈물 범벅이 된 안경 밖으로 보이는 대전역 표지판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왁자지껄 했던 우리의 대화와 웃음코드는 모래처럼 떠밀려 간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새해가 올 때마다 친구 없이 술을 먹고 추억을 팔 것이다. 우리에게 그의 죽음은, 오히려 그가 있었던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 뿐이다. 내 친구는 젊음을 잃고 영생을 얻은 셈이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선물 받았다. 100살까지 우려먹을, 아주 값 비싼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