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나를 견디게 하는 것들

by 모지란

아들의 일기장은 언제나 붙박이장 안에 있다. 일기 쓰는 시간에는 방문을 닫는다. 일곱살 인생에 벌써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가보다. 일기는 짧으면 30분, 길면 두 시간이 족히 걸린다.


“엄마, 절대로 들어오면 안돼요.”


나는 주제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조금 실랑이를 하다가 흥미를 잃은 척 돌아선다. 주말은 창작의 고통을 견뎌낸 아이의 한숨으로 마무리 된다. 얼마 전, 알림장에 ‘일기 챙겨오기’가 써있어서 아들을 불렀다. 내가 볼세라 허겁지겁 붙박이장을 열었다 닫는 모습을 보고 일기장 금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일기 봐도 돼?.”

“응, 선생님은 글씨 검사해주는 거니까.”


일기의 완벽성을 위해서만 어쩔 수 없이 공개한다. 전문작가 수준의 엄격한 기준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좋았어.”

“기억나는 일 없어?”

“다 까먹었어”의 반복이었던 1학년, 별 일 없는 1년이었다.


기억력도 좋지 않은 내가 간간히 나오는 친구들 이름은 줄줄이 외운다. 혹시라도 아이가 대화의 기색이라도 비치면 그간 들은 이야기를 엮어보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내 마음처럼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수다는 대부분 할머니 차지다. 아들은 자기 엄마 대신에 나의 엄마에게 속내를 보여준다. 우리 엄마는 빈틈없이 비밀을 지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보에 관한 허기짐이 심하다. 나에게 일기장은 최고의 먹잇감이다. 나는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하여 아이의 방을 나서는 게 아니다. 나는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언젠가 찾아 올 단 한번의 순간을 위하여! 그동안은 일기장의 비밀이 누설된 날과 같은 빈틈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같은 실수는 두 번 일어나지 않았다. 종업식 직전 기회가 왔다. 부득이 연차를 쓰는 날이 생겼다. 학교는 봄방학 직전 정규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결석을 하기 어렵다.


아이가 학교에 간 뒤 붙박이장은 내 것이 되었다. 장 속에 어질러진 옷을 치우면 들킬 우려가 있다. 아이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할머니가 붙박이장 구석구석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할머니, 내 것 뒤지지 마세요.” 아이는 할머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애 썼지만 무척 단호했었다.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나, 잠시 현실자각타임이 왔지만 그간의 열망으로 이겨낸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의 이름은 ‘신나고 즐거운 나의 하루’, 공책 아래 바른 정자로 적힌 이름에 코 끝이 찡해진다. 작년 한 해 많이 바빴던 탓에 아이 선행학습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나마 유치원 선생님의 열정으로 아이는 자기 이름 쓸 정도로만 한글을 배워 입학했다. 가끔 자음을 반대 방향으로 쓰고 없는 글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제는 모음에 꺾기도 넣은 궁서체로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사람을 함께 키워준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공책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간 날, 아이는 학교를 빠져서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썼다.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기분 표현에 색연필로 칭찬을 남겨주었다. 땡땡이치는 학생을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시는 아량에 감탄하였다. 날씨는 늘 쨍쨍하다. 폭설이 내린 날 하루를 제외하고 이렇게 날씨가 좋았던가 생각해본다. 글씨는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유치를 처음 뺀 날은 모든 문장이 띄어쓰기를 전혀 안하고 숨 쉴틈 없이 붙어있다. 제법 박진감이 넘친다. 아들은 치과에 가기 싫어서 할머니께 이를 빼달라고 했다.


image01.png

“1. 이빨에 실을 묶고 2. 그 다음에는 머리를 세게 때리면 끝.”


나는 이를 넣을 유리병만 준비해주고 웃긴 순간은 놓치고 말았다. 태권도 승급심사, 발가락에 상처가 난 것, 이모가 좋아하는 게임을 사준 것, 맛있는 급식 메뉴, 매일의 조각들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글 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초등학교 일기장은 문장이 세 줄만 되어도 가득 차게 만들어졌다. 하루는 수많은 사건으로 가득하지만 글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조차도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써야해서 글감 찾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일부러 까먹은 것은 아니다. 문득 성의없이 느껴졌던 아이의 대답이 이해되었다.


가장 마음에 남는 일기는 1월 16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도착한 아이는 할머니와 길이 엇갈던 것 같다. 불 꺼진 집 안에 강아지만 마중을 나왔다. 아이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방을 여기저기 들어가 본 뒤 엄마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일을 하느라 늦는다고 아이에게 설명해주었다. 울먹거리는 표정이 머릿 속에 선하였다. 아이는 퇴근한 나에게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았기에 여태껏 몰랐다. “사랑해요.”를 밥 먹듯 말하는 아이라서 감정 표현이 적극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곱씹어보니 슬프면 울더라도 어떤 마음인지 말로 표현하지는 일은 적었다. 일기를 쓰며 섭섭한 마음을 달랬을 아이를 생각하며 무척 미안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굴은 환상의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몰래 열었던 붙박이장은 아이의 세상으로 이어져 있었다. 작가인 루이스 캐럴은 필명으로,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다. 작가는 하숙집 아이들을 위하여 지어낸 이야기를 묶었다고 한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세상을 함께 만나고 기록한다. 나도 어릴 적에 살았던 세상인데 아이를 통하여 다시 만나니 생경하다. 어른의 눈으로는 아이의 풍부한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읽어보지 않은 책이지만, 제목은 1월 16일의 일기와 겹쳐진다.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일 처리에 바빠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집을 비운 나를 상기한다. 마치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나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본다. 일기장으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작은 모험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희노애락을 함께 겪는 재미있고 안전한 동료이고 싶다.


봄방학이 시작 되고 일기는 자율과제가 되었다. 학습지 대신 일기로 문장쓰기 연습을 하기로 했다. 엄마의 일탈을 눈치챈 것인지, 요즘은 일기 쓰러 가기 전 오늘의 주제를 슬쩍 알려주는 일기-예보를 한다. 급기야 무슨 일이 있으면 일기 주제로 제안을 한다. 물론 내용은 끝내 안 보여준다.


“괴발개발로 쓰지만 말아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재미있어요.”

“눈밭 위에 강아지발, 고양이발 모양처럼 글씨를 어지럽게 쓴다는 말이야.”


언젠가 대화의 틈새로 엿볼 세상을 기다리며, 20년 전 유행했던 포켓몬 게임을 같이 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너는 아무리 공부해도 미지의 영역이다.


작가의 이전글아프니까 강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