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견디게 하는 것들
개의 심장은 인간보다 빠르게 뛴다고 한다. 심장 뛰는 속도에 맞추어 그의 시간도 나를 앞선다. 나의 강아지는 나보다 빨리 중년이 되었다. 나는 중년 개의 시선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소파에 누워있는 그가 식탁에서 작업하는 나를 바라볼 때 행복하다. 우리는 데면데면하다. 이름을 부르면 잘 오지 않는다. 하루가 끝나 이불 속에 발을 넣으면 복숭아뼈 근처에 그가 눕는다. 집을 나갈 때 가끔 공손히 머리를 숙여준다. 나는 출근길의 여흥처럼, 그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의 인사라고 혼자 착각한다. 나의 하루를 기쁘게 만드는 착각이다.
나의 강아지는 ‘양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절대 뛰지 않는다. 배달음식이 도착했다고 벨이 울려도 멀리서부터 찬찬히 짖으며 걸어서 현관에 도착한다. 그나마 장난감을 던져주면 뛰는 시늉을 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일품이다. 앞과 뒤의 다리가 리듬감 있게 땅을 박차지만 딱히 속도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갈색 털뭉치가 방방 거리며 돌아다닌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난감들은 몇 번 내게 가져오다가, 물고 뜯는 것이 좀 미안하면 양 발로 껴안고 열심히 핥아준다. 내가 그에게 딱 하나 불만이 있다면 입냄새다. 인형들은 거실 한 켠에 쌓여 쿰쿰한 냄새가 뿜는다. 한 번에 세탁하면 허탈해하므로, 간간히 몰래 빨아 다시 가져다 둔다. “소중하다”는 개와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와 함께하는 일상은 아주 소소해 보여도 전쟁 같은 삶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손가락으로 등을 긁으며 느끼는 체온, 발바닥의 꼬리한 향, 베개 곁에서 힝-힝 콧물 튀기기, 원치 않게 혀가 닿는 뽀뽀 같은 것들은 다이어리에 붙이는 귀여운 스티커와 같다. 불쑥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는 사람으로 따지면 조금 과묵한 편이다. 그래서 나는 몸짓이나 작은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는 편이다. 나의 강아지는 개린이가 될 때까지 짖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책맞은 부모라서 12개월쯤 되어서 동네 수의사에게 혹시 강아지 실어증도 있냐고 물었더니 “때 되면 강아지가 알아서 짖을 것”이라고 명확히 답을 주었다. 방문객이 있거나 우리끼리 식탁에 모여앉아 있으면 그 때가 온다. 그렇다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왕왕 짖기보다는 우리를 부르는 편이다. 요즘 좋아하는 뉴진스의 노래 Ditto가 떠오른다. 노래 제목은 나의 개의 이름인 ‘띠로’와 닯았고, 인트로는 강아지가 우리를 부르는 “우우~” 소리가 나온다. 기분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다. 사무실에 따라갈 때는 끼잉~에 가깝고 식탁의 음식이 탐날 때는 낮고 천천히 우우~한다. 배를 긁어주면 바람소리로 끄으~ 한다. 좋아하는 인형을 숨기면 깨앵~에 가깝게 짜증스러운 소리를 낸다.
연차만큼 알아듣는 단어도 많다. 선택적 경청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식사와 관련된 단어는 무척 잘 안다. “계란?”하는 말에 걸음을 재촉하는 그가 “사랑해”라는 말도 비슷한 정도로 알아 들어주었으면, 하고 욕심을 냈었다. 지금은 다른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좋으니 “아파”하고 한 마디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말은 인간의 도구이다. 인간은 말로써 자신과 다른 존재를 구분하고, 우위에 있다고 여긴다. 개와 함께 생활 하다 보면 말만 할 줄 아는 인간이 오히려 멍청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말 없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다. 강아지와 함께 살다 보면 말로 퉁 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가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고, 거리를 두며 몸짓으로 설득해야 한다. 나의 행동은 개에게 메시지가 된다. 좋은 습관은 우리 관계에 규칙을 만든다. 달변으로는 꾸밀 수 없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월요일 아침, 끽끽 거리는 기침소리가 우리를 깨웠다. 나는 급히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원체 유전적인 질병들이 있었기에 기관지염이리라 추측했다. 환절기마다 늘상 물을 따뜻하게 데워주곤 했기 때문이다. 수의사는 청진을 마치고 조심스레 검진을 권했다. 대기실에 앉아있으니 진료를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견주의 안쓰러운 눈빛과 강아지들의 사랑받은 태가 교차한다. 동네 막내 아들, 딸이 모두 모였다. 나와 강아지도 저런 모습일까, 검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체온과 감촉이 벌써 그리워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20분을 견디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수의사는 심장이 망가졌다고 설명한다. 나이 든 강아지는 60%가 심장병을 앓고 노화는 견주의 책임이 아니라며 위로한다. 엑스레이가 화면에 떠 있고 하얗게 부푼 심장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와 달리 개를 직접 안고 돌아왔다. 걸어오는 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졌고 그의 등을 적시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오늘부터 매일 12시간 간격으로 먹어야 하는 심장병 약을 손에 쥐고 머릿속에는 수만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문이 열리자 나보다 먼저 누군가 들어선다. 윗층에 사는 이웃이다. 평소였으면 인사를 나눴을텐데 정신이 없어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어머, 강아지 예쁜 것 봐봐. 몇 살이에요?” 챙이 넓은 핑크색 모자를 쓴 이웃은 봄바람 같은 목소리로 묻는다. “열 살이에요...” “생긴 건 아가 같은데 벌써 열 살이구나? 그럼 얘도 어디 아프겠다. 제 동생이 골든리트리버를 키우는데 관절이 안좋아서 요즘 고생하거든요.” “아! 가끔 산책시키시는 것 봤어요.” 그 친구도 참 얌전하다. 작은 강아지 앞에서도 흥분하는 기색없이 1층까지 동행했었다. 집이 고층이라 멍 때리고 싶던 차에 이어지는 대화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 때였다. “근데 보면 강아지들 다 아파요. 안 아픈 애가 없어요. 다들 예뻐하고 보살펴주니까 아프면 금방 알아채고 관리하지. 예전에는 모르고 지날 뻔한 것도 다 챙겨주니까.”
이웃이 별다른 의도 없이 던진 그 말, 요즘 개들 다 아프다는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야생에서 아픈 개체는 무리와 떨어져 도태된다. 늑대는 병에 걸려도 아픈 기색을 내지 않는다. 반면 나의 강아지는 수도 없이 캑캑대고 불편해 한다. 나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픔을 표현한다. 우리 곁에서 점차로 나이가 들고 쇠약해질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가 버리지 않고 보살펴주리라는 믿음으로. 병원 대기실에 모여있던 강아지들은 모두 그러한 마음으로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자식들이었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반려견 오레오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똑똑한 보더콜리 오레오는 헤어가 장난감을 던진 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서 수색을 시작한다. 헤어는 개가 인간에게 길러지기를 택하는 ‘자기가축화’로써 안정적인 생존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친화력을 가진 동물이 자연에서 더욱 잘 살아남았다고 설명한다. 자연은 적자가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공존함으로써 변화에 적응한 개체를 선택했다. 다정함, 나와 다른 존재를 끌어안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날카로운 이빨 없이도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이다.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238P)
개와 나는 서로를 다정히 여기는 삶을 선택했다. 이제 그는 바삐 뛰는 심장까지도 내게 주려는 걸까? 딩동, “내릴게요. 감사합니다.” 엉겁결에 위로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이웃은 조금 벙벙한 표정이다. 엘리베이터는 가뿐하게 윗층으로 향하고 조용히 안겨있던 나의 강아지는 기지개를 켠다. 아프니까 강아지다. 네가 아플 때 내가 너를 보살필게. 타타-타타 강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녹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