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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재밌는 놀이를 알게 됐다.
나를 세상 속 여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그때 나는 희열을 느끼고 머리에 피가 솟아 핑핑 돌아버린다.
그 순간에는 당장이라도 학교 운동장 10바퀴를 뛰고 싶을 정도로 몸의 에너지를 주체하기 힘들어진다.
나의 두 무릎을 팡팡 치고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손끝을 타닥타닥 거리는... 이상행동을 한다.
이 놀이는 보통 극도로 열망하는 것들이 나에게서 떠날 때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너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못하게 됐다던가, 사랑하는 것이 죽어간다던가, 애인의 바람 같은 것 말이다.
머리가 핑핑 돌아서 마치 도라에몽의 대나무 헬리콥터를 쓴 것처럼 하늘을 떠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다.
간절히 원했다.
내가 연기를 하고 있지 못한 이유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며, 혹은 내 탓으로 돌리며 ”역시 난 안돼 “ 자책을 한다.
그럴 때 머리가 핑핑 돈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해 눈물이 나는 모습을 스스로 연민한다.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언뜻 보면 그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그 흐르는 눈물은 나를 더 각성하게 만들고 더 또렷하게 만든다.
사실 간절히 원하지 않았던 일이 간절해지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탓을 하며 미뤄왔던 순간들이 합리화가 된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면 나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나는 다 늙은 강아지와 함께 산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 전날까지는 같이 뛰어놀고 짖고 밥 먹던 아이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다.
아직 숨결이 붙어있는 그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모든 걸 때려 부수고 싶을 정도로, 각성된 상태로 머리가 핑핑 돈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왜 아직 숨결이 붙어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사랑해”를 내뱉는다.
그러면 나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은 정이 많고 따뜻한 소녀역을 맡은 여주인공이 되어있다.
애인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나의 애인이 다른 여자와 손을 잡고 뽀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극도의 희열을 느낀다.
나를 토닥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나를 연민한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 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슬픈 사랑을 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있다.
이렇게 나를 연민하고 이 세상의 여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그보다 짜릿한 순간은 없다.
내가 잃은 것만큼 다른 모든 것들을 소멸시키고 싶다.
나의 상태를 극한으로 각성시켜 머리를 핑핑 돌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원하는 걸 몇 번이든 떠나보낸다.
그렇게 나는 또 혼자만의 여주인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