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또 이토록 신선하고 색다른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일상 속 심포니.
‘어메이징 오케스트라 시리즈 – 더 콘서트 37.5’의 슬로건을 읽자마자 호기심이 생겼다. 오케스트라는 대중의 일상과 거리가 먼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어떤 공연을 준비했기에 일상 속 심포니라는 문구를 썼는지 궁금했다. 보고 싶은 오케스트라 공연인 데다 호기심까지 자극 돼서 관람 기회를 덥석 물었다.
‘더 콘서트 37.5’는 대규모 클래시컬 크로스오버의 무대를 선보였다. 클래시컬 크로스오버는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조합을 이루면서 클래식 고유의 품격을 잃지 않는 음악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고전음악을 팝 음악으로 변화시킨 팝 오페라(팝페라)도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장르였다. 팝페라는 한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라 처음 알게 된 장르임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신선하고 색다른 조합의 음악을 대규모의 연주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니 기대감이 훅 올라갔다.
‘더 콘서트 37.5’는 웅장하고, 깊은 울림으로 관객의 가슴 속에 숨어 있었던 음악을 향한 1도를 깨우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의 꿈이 자랄 수 있도록 수익금을 기부하여 나눔의 온도 1도를 채우고자 공연을 기획했다.
‘일상 속 심포니’는 이 공연을 이끈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의 모토였다. 한국 대표 팝 오케스트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클래식을 추구한다. 대규모 뮤지션과 함께하는 연주를 선보이거나 정부 주관 행사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일상 속 심포니의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도 그 모토를 전하기 위해 대중에게 친근한 곡들로 구성한 공연을 보여줬으며, 다양한 장르 그리고 악기와 콜라보해서 색다름, 신선함, 특별함의 매력을 뽐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라고 하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하프, 플루트, 오보에, 바순, 클라리넷, 트럼본, 트럼펫, 호른, 피아노, 심벌즈, 팀파니, 트라이앵글, 탬버린, 벨, 튜바, 북, 실로폰을 떠올렸다. 그런데 여기에 속하지 않는 악기의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내 눈동자가 그 악기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시선 끝에는 일렉기타, 드럼, 아코디언이 있었다. 관현악기 틈에 매우 자연스럽게 있는 모양새가 생소하고 신기했다. 동시에 관현악기의 선율에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스며든 소리가 들려서 속으로 감탄했다. 특히 팀파니 옆에 드럼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어서 시선이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다. 후반부에는 드럼의 연주 배틀이 있었는데, 이를 오케스트라 공연과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보았다니 직접 보고 들었는데도 믿어지지 않았다.
국악 그리고 하모니카와의 콜라보 공연을 볼 때는 감탄을 숨기기 어려워졌다. 우리 전통악기인 장구, 북, 꽹과리가 서양악기와 그토록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전통악기의 소리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입혀질 때 느꼈던 전율과 울컥했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의 콜라보 공연은 그동안 몰랐던 하모니카의 매력을 알게 해줬다. 어렸을 때 집에 하모니카가 있어서 만져보고, 불어보기도 하면서 느낀 건 하모니카의 매력은 단일하다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하모니카의 매력을 재발견했다. 단일한 게 아니라 순수함이었으며, 다채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또 하모니카는 독주회에서만 돋보일 줄 알았는데, 다른 악기와의 합주에서도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호흡했다.
국악, 하모니카, 일렉기타, 드럼과 오케스트라의 조화로운 공연은 내가 여러 악기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재발견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팝과 트로트를 오케스트라로 재해석한 연주를 들으면서 넘나드는 장르의 가능성을 재발견했다. 사실 팝은 좀 익숙했지만, 트로트를 오케스트라로 재해석한 연주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우리 원래 잘 어울렸어!’라며 우쭐대듯이 관현악기의 선율과 트로트의 멜로디가 어울리는 광경에 웃음이 터졌다.
한편, 중년 이상의 관객까지 배려한 마음에 감동이 느껴졌다. 콘서트홀 안을 둘러보니 어느새 어르신부터 젊은 관객까지 박수치며 즐기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공연 현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홀 안의 분위기는 자유롭고, 활기찼다. 동시에 한국의 클래식 공연 기획력이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저번에 향유한 국악뮤지컬에 이어 이번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공연까지. 장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음악 그 자체로 향유하는 경험을 하게 되어 감사함에 마음이 훈훈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본 게 두 번째인데,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이 콘서트홀을 좋아하게 됐다. 관객이 무대를 에워싸고 있는 구조와 웅장하고 선명하며, 풍부한 소리를 극대화해 주는 점이 좋았다.
무대 주변으로 동그랗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좌석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자들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앞모습에서 놓친 소소한 것들을 연주자의 뒷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모든 악기를 눈에 담고, 연주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휘자의 표정과 몸짓을 가까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보통 지휘자는 연주자들을 바라보고 있어서 관객은 지휘자의 뒷모습을 많이 본다. 이런 구조는 지휘자의 몸짓과 손짓은 볼 수 있지만, 표정까지 보기 어렵다. 운이 좋게도 지휘자를 바라보는 각도의 좌석에 앉아서 몸짓, 손짓, 표정 모두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한 음 한 음, 박자 하나하나에 표정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데, 지휘자의 음악과 연주자들을 향한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휘자와 같진 않겠지만, 비슷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겼다.
이 공연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초등학생 때 리드합주부를 했었다. 처음에는 멜로디언을 맡았고, 나중에는 아코디언 알토를 맡았다. 아코디언을 연주할 때는 어느 정도 자란 뒤라서 귀에 들리는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다르게 들려왔고, 조화를 이룬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어려서 그 기분이 정확히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힐링이었다. 그 힐링은 현악부와 합주를 하면서 더 커졌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더 풍부한 사운드를 내는 게 신기했고, 벅찼다.
서로 다른 세계에 있던 악기들이 만나 아름답고 황홀한 사운드를 보여준 ‘더 콘서트 37.5’의 공연은 어릴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끌어올려 줬다.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 시도가 계속되어야 내가 향유할 클래식의 폭이 넓어지고, 더 다채로워지니까. 나만의 욕심일지라도 이런 욕심은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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