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화제를 자기 자신 위주로 바꾸는 사람.
모든 대화에서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
상대방이 하는 말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안 듣고, 중간부터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영혼없이, 형식적으로 리액션을 하고 다시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내 이야기만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예민하고, 부정적인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경청하지 않는 사람.
눈을 바라보지 않고, 휴대폰이나 TV를 보며 대화하는 사람.
위와 같이 우리는 자기중심적, 일방적, 배려 없이 대화하는 사람을 피하고 싶어한다.
공감을 주고 받지 못하니 마음이 통하지 않고,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대화는 참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이다.
남이라면 그런 사람을 피하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그럴 수 없다.
서운함과 불만만 쌓이고, 상처가 되며 이윽고 마음을 닫게 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대화를 피했고 서서히 마음을 닫게 됐다.
부모님, 동생과의 대화에서 나는 늘 듣는 입장이었다.
하소연, 자기 자랑, 일상 이야기 등 모두 난 듣기만 했다.
그래도 동생은 내가 누나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는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소통이 조금씩 되기 시작했다.
아직 예전의 대화방식을 하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의 말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토닥여주실 때가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엄마와는 여전히 소통이 안 되고, 일방적인 대화만 계속 되었다.
엄마를 향한 서운함과 원망은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커졌다.
- 엄마, 나 감기 걸려서 너무 아파. 열도 나고. 목도 아프고..
- 엄마도 감기 걸렸어. 콧물도 나오고, 열도 나고 머리 아파.
- 아... 그래? 많이 아파? 병원은 다녀왔어?
- 응. 몸살까지 났어. 병원 갔다왔지. 약 먹고 쉬면 된대.
- 그래도 다행이네. 약 먹고 푹 쉬세요. 나도 몸살까지 나서 여기저기 아프고 열이 오르락 내리락해서 힘들어.
- 그래? 병원은?
- 갔다왔지. 약도 먹었는데, 잘 안 나아지네
- 엄마는 어제 좀 추웠는데 그래서 감기 걸렸나봐. 팔 다리까지 아파. 계속 기침하고 어지러워.
- 아.. 많이 아파서 어떡해.
- 요즘 감기 되게 무섭대. 병원 가니까 사람도 엄청 많더라. 거기서 아는 사람도 만났는데 그 아줌마도 감기 심하게 걸렸다고 하더라고.
- 아.. 그랬구나.
- 오늘은 일찍 자야겠어.
- 응. 약 잘 드시고, 일찍 주무셔. 몸 따뜻하게 하고, 잘 챙겨드시고.
-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역시 엄마 생각해주는 건 딸밖에 없어.
- 엄마, 요즘 코로나가 너무 심해서 무서워. 주변 사람이 걸리니까 더 겁나더라고. 무서워.
- 으응.. 무서워? 여긴 별로 안 심한데.
- 요즘 진짜 심각하긴 한 가봐. 진짜 조심해야겠어.
- 그랬구나~ 여긴 아직 걸린 사람이 없어 별로 안 심해.
- ....... (심술나서) 얼마나 심하면, 남자친구 어머님까지 나 걱정하시더라고.
- 그래? 좋은 분이시네~ 여긴 그렇게 안 심해서 다들 그렇게 걱정 안 해.
- 아.. 그래.
며칠 후, 엄마에게 "딸, 여기 코로나 걸린 사람 벌써 3명이나 생겼어. 그러니까 엄마 너무 무서워." 라는 메시지가 왔다.
이런 식의 대화가 쌓일수록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어졌다.
소통이 안 되는 대화, 일방적인 대화, 자식이 아니라 엄마에게 하소연을 털어놓듯이 이야기하는 모습....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엄마의 연락도 피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나의 안부가 정말 궁금해서 연락한 줄 알고 반가웠다. 하지만 이내 실망했다.
나의 안부가 궁금하긴 했을 거다. 하지만 그 마음보다는 하소연을 털어놓고 싶어서, 어딘가에 다녀오거나 하고 싶은 말들이 쌓여있어서, 자기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연락한 마음이 더 커 보였다. 그게 너무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이런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두렵기도 했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엄마인 것처럼 받아주지 않으면,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고, 챙겨주지 않으면..
엄마는 나를 예뻐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내가 반장이 되고나서야 나에게 관심을 보였던 그때처럼 엄마는 내가 잘해야만 예뻐하니까.
처음에는 엄마가 엄마한테 받은 게 없어서 잘 모르셔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동생의 이야기를 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보듬어주고, 응원해줬다.
질문도 동생에게 맞춰져있었다.
엄마와 동생과의 대화에서는 항상 주인공이 동생이었고,
엄마와 나와의 대화에서는 항상 주인공이 엄마였다.
그게 그렇게 서럽고, 서운하고, 미웠다.
나도 다른 딸들처럼 엄마한테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부리고, 하소연도 늘어놓고 싶었다.
그러면 나를 걱정해주고, 들어주고, 토닥여주는 그런 엄마의 보살핌과 관심, 사랑을 받고 싶었다.
아무리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듣는 역할만 하는 걸 자처하는 경향도 있다.
듣는 역할에 매우 익숙해져서 그게 더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는, 나에게 자기 할말만 쏟아내고 내 말은 경청하지 않는 가족들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원망스러웠고, 엄마를 향한 원망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