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 (애어른)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
일찍 철이 들고 착한 아이.
눈치를 많이 보고, 눈치도 빠른 아이.
혼자서도 잘 하는 아이.
사준다고 해도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 (원래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기억해놨다가 친척이 오면 손 잡고 끌고가서라도 얻어냈던 아이였다.)
동생을 잘 챙기는 누나.
엄마가 시킨 임무들을 잘 완수하는 첫째.
모두 나를 나타낸 말이었다. 난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칭찬이라고 여겨서 좋아했다. 어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계속 그런 아이이고 싶었다. 그런 면들은 나도 인정할 수 있는 장점이었기에 그 장점들을 잃게 될 까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나를 향한 관심은 시들해질거고 더는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마주하고 난 뒤에 그때의 나를 다시 보니, 때론 그런 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본심이 조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내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책임감이라는 무기로 꾹꾹 눌렀고, 지속된 억눌림에 의해 본심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버렸던 거다.
그 본심은 나를 마주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되고, 분노와 원망 그리고 미움을 직면하게 되니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 소리는 그런 아이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조르지 않았다. 슈퍼에 데려가서 먹고 싶은 것 하나를 골라보라고 하면 세 살짜리 아이가 삼백원짜리 껌 한 통을 가져왔다. 당시 아직 이십대였던 그녀는 그런 소리가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그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소리가 아이답지 않게 아무것도 조르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자랑하자 그는 놀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뭘 먹고 싶어? 소리는 뭘 하고 싶어? 소리가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하면 아니, 소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거, 라며 다시 물었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소리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파종 p.190) ]
[ 소리는 일찍 철이 들었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일 때부터도 집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싱크대에 더러운 그릇이 있으면 재빨리 설거지하고, 쓰레기 봉지가 가득차면 낑낑거리며 내다버리고, 어른들이 집에 없으면 스스로 밥을 차려 먹었다. 그는 소리의 그런 모습을 마냥 대견해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녀에게 소리가 혹시 자기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혼자서도 잘하고 소리도 이제 다 컸네."
집에 놀러온 이모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리 아직 아이예요." 그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파종 p.196-197) ]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파종'에서의 소리의 삼촌처럼, 누군가는 그래주길 바라는 본심이 있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봐주길 바라는 마음.
애늙은이라고, 착하다고, 일찍 철이 든 딸이라고 자랑할 때나 그런 점을 칭찬할 때, 듬직한 누나이고 첫째라고 할 때 누군가는 얘도 아직 애라고, 첫째가 아니라 아이이고, 같은 자식이라고 대변해주길 바라는 마음.
누군가는 내게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아도 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철 없이 굴어도, 착하지 않아도, 애처럼 굴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너도 아직 떼 써도 된다고, 너도 때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
내가 힘들어도 웃고, 아파도 웃고, 다 괜찮다고 하면 넌 괜찮은 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고,
힘들거나 아플 땐 웃지 않아도 되고, 솔직히 말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궁금하면 물어봐도 되고, 원하는 게 있으면 조르고, 납득이 가지 않으면 따져물어도 된다고 하길 바라는 마음.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혼자서 잘 못해도 괜찮다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
꼭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어른이 시킨 일에 그렇게까지 책임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며 긴장을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
너도 아이이고 같은 자식인데 어른처럼, 보호자처럼 행동하느라 힘들었겠다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작은 어깨에 짐을 올리느라 힘들고, 아무도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외로웠겠다고 위로해줬으면 하는 마음.
고생했고, 고마웠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린 널 단정하지 않으며, 너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나의 본심이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래주길 바랐고, 그 누군가가 부모이길 원했다.
처음에는 본심을 꾹꾹 눌렀던 나 자신을 탓했다. 내가 자초한 거니까.
그러나 분노를 꺼내어보니 내가 아니라 나를 그렇게 만든 당시의 어른들을 탓하게 됐다.
그런 아이를 더 세심하게 살피고, 도와주고,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게 어른 아닌가.
오히려 더 부추기고, 그렇게 해야 관심을 보이고, 칭찬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첫째니까, 누나니까, 원래 착하니까 라는 전제를 아이에게 깔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첫째여도, 누나여도, 착해도, 일찍 철이 들었어도, 독립적인 성격이어도
아이는 아이이며, 나도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어린 애였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으면 어른은 그런 아이를 방치해서는 안 되며,
그런 아이를 만만하게 보거나 그런 점을 이용하면 안 되는 거였다.
무엇보다 부모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