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은 다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해와 사랑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추억들을 원동력 삼아 닫혀 있던 마음을 스스로 열었다. 그동안 받은 상처들, 분노, 미움, 원망이 사실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자 그 감정들이 두렵지 않았다.
억지평화를 깨면, 숨어있던 우리 가족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계속 억지평화를 방치할 수 없다. 억지평화는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다.
조용히 묻어가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결국 존재감을 드러내는 문제들도 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도 그 문제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당장은 괜찮아보여도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드러난다.
내가 겪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를 지켜야 했다.
난 가족을 믿었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부터 변화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부터 바뀌자. 내가 먼저 다가가 보자. 내가 먼저 마음을 보여주자.
안 들어줄 거라고 단정 짓지 말고 말해보자.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다시 일어나긴 했는데 아직 회복 중이야.”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방향을 잘 잡고 걸어가고 있다?! 나 잘했지? 칭찬해줘.”
“우리가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닫힌 마음을 여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해주면 안 돼?”
“그동안 나한테 상처 준 가족들이 너무 미웠어. 나를 부정하고, 수용하지 않고, 공감과 존중하지 않아서 힘들었어. 그러면서 나한테 감정을 쏟아 부어서 가족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어.”
“아무리 말해도 경청하지 않고 돌아오는 건 나를 몰아세우고 비난뿐이라 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괜찮은 척하며 꾹꾹 참았지. 이러는 게 좋은 거고 내가 착한 거라며 합리화하고 위선을 떨면서 마음을 닫고 있었어. 그동안 마음 닫아서 미안해.”
“이제는 가족들을 믿고 내가 마음을 열고, 변화하기로 했어.”
“상처가 너무 많고 오래되어서 막막한데, 괜찮아. 앞으로 치유해나가면 돼.”
“사실은 나... 혼자서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고 외로웠어. 이젠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해. 나 좀 도와줘.”
그렇게 조금씩 내 목소리를 냈다.
나를 보여주었다. 나도 참는 횟수를 줄이고, 감정표현을 했다.
이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변화한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고, 여전히 내 문제로 돌리거나 회피하기만 했다.
기분 나쁘다고 이야기하고, 화도 내고, 서운한 것들을 표현하는 나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시간이 지나면 없던 일로 되겠지 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가족 아니랄까 봐, 세 사람의 반응은 똑같았다.
나는 한 명씩 돌아가며 또는 한꺼번에 부딪히고, 서로 닮은 그들의 반응들을 감당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실망도 했지만, 이해했다.
갑자기 변한 내가 낯설겠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구나, 다 과정이다 라면서.
그래도 받아들여주고, 이해해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만큼 습관으로 자리 잡았던 거였구나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과정은 점점 더 험난해지고, 기다림은 점점 더 길어졌다.
심지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의 반응들까지 겪어야 했다.
뚝하면 전화를 끊고, 이따 이야기하자며 대화를 거부하고, 내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안 하면 최소 일주일, 최대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나를 방치했다.
이젠 가족들의 갈등을 푸는 방식에 맞춰줄 수 없으며, 내가 싫어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는데도 반복했다.
서운한 거 말하거나 화를 냈다가 도리어 내가 가족들의 성질을 받아주는 상황, 내 탓하는 상황, 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상황,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모르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우기는 태도, 설명을 해도 듣지 않는 태도, 가족들이 생각할 시간을 갖는 동안 애가 타고 피가 말려 기다리다 지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
이 패턴은 반복되었다.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시행착오이고, 과정이라 해도 더는 받아줄 수 없었다.
나도 성질내고, 되갚기라도 하듯이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랬더니,
“무릎이라도 꿇을까? (엄마는 실제로 무릎까지 꿇었다.)”
“지나간 일 가지고 그러냐. 그만 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너만 힘들어? 나도 ~~ 해서 힘들어”
“나 요즘 ~ 때문에 다른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너까지 왜 그러냐. 그냥 좀 넘어가지.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누나만 우울증인 거 아니야. 나도 우울증이야. XX!! 그냥 서로 신경 쓰지 말고 살자!! 연 끊자!!”
“누나 같은 사람은 없어!! 엄마랑 아빠가 왜 누나보고 예민하고 부정적이라고 하는 지 알아? 엄마가 누나한테 뭔 말을 못하겠대!” 라는 말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안 할 때는 경멸의 눈빛,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저거 또 시작이구나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예민하게 군다는 메시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그래놓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는 말들은
“(내가 같이 사니까) 누나는 엄마 폐경기라 옆에서 신경 좀 써달라는 건데, 별 것도 아닌데 내가 괜히 누나한테 화풀이했어. 그때 힘들어서 그랬어. 미안해. 내가 보기엔 그냥 우리 서로 힘든 얘기 안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 같아.”
“그때 내가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랬어. 미안했어.”
“내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래. 미안해”였다.
이미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이기도 했고, 진심으로 사과하니
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좋게좋게 넘어갔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내 감정의 골은 깊어졌었나보다.
가족들의 반응들이 내겐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다시 지쳐가고, 무너졌다.
난 또, 괜찮다고 하면서 내 상태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