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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Oct 03. 2024

또 다시 번아웃.

이번에는 인생 자체에 번아웃이 왔다.

또, 또...

화재감지기가 작동했다. 새 집에 이사 온지 일주일인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방화문 바로 앞에서 거주하던 나는 방화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그 소리에 놀라 문을 여러보니 방화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 순간 눈앞이 까마득했다.


24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는 내내 나는 언제 내려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다행히 오작동이었고, 물론 난 다친 곳도 없이 무사했다.


며칠 후 또 오작동이 일어났다. 그 후, 오작동은 밥 먹듯이 일어났다. 새벽에도, 이른 아침에도, 저녁에도, 낮에도 시시때때로 오작동이 일어났다.


방화문과 경보기는 우리에게 화재를 알려주는 좋은 장치이므로 그걸 탓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오작동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면 점검과 수리보수를 해야 하는데 나몰라라하는 관리인들의 태도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무조건 오작동이라고 하는 대처때문에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아무리 오작동이어도 그게 울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걸 해결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됐다.

사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걸까.


사실 새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이미 경보기 오작동에 시달린 상태였다.

전 집, 아니 전전 집부터 공포감을 느꼈던 상태였다.

그래도 새 집에 이사 오면서 결심했었다. 더는 불안해하지 말자. 괜찮다.

그러나 나의 결심을 비웃기라도 한 듯이 바로 오작동이 일어난 것이다.


첫 집은 그래도 주인아저씨가 계셔서 대처를 잘 해주시고, 잘 살펴주셨지만 진짜 그럴 뻔한 적이있어서 무서웠고, 두 번째집은 분명 방금 알아놓고 무조건 오작동부터 외치는 관리인을 보고 공포감이 더 심해졌다.

세 번째집은 두 번째집보다 횟수가 더 많았고,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묻어뒀던 불안이 매우 크게 불어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산다는 것 자체에 번아웃이 왔다.


되돌아보니 단순히 경보기 오작동을 나몰라라하는 관리인 때문에 번아웃이 온 건 아니었다.

안그래도 번아웃이 또 다시 내게 찾아왔는데, 삶에 위협까지 느끼니 아예 무너져버린 거였다.


기대와 희망, 가능성을 갖고 나를 바꿔보고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어보자. 부딪혀보자

그렇게 결심한 이후로 나는 정말 변했다.


애인에게만 감정에 솔직했던 나는 가족들에게도 감정에 솔직해지고 있었다.

속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게 됐고, 의사표현도 확실해져가고 있었다.


더 이상 가족들의 미성숙함과 이기적인 행동과 말들, 나에게만 의지하는 것들을 점점 받아주지 않게 됐다.

참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애써 묻어뒀던, 눈 가리고 아웅했던 나와 가족의 문제 그리고 우리 가족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싸우더라도 부딪히고 화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걸 참아주고, 받아주고, 의지가 됐던 딸, 누나가 갑자기 달라지자 가족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시행착오이려니 생각하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부딪혀보기로 한 건 후회 없다.

내가 언제까지 딸이 아니라 부모역할할 순 없지 않은가.

나도 같은 자식이고, 동생에게 부모가 아니라 누나일 뿐이다.

따라서 나만 가족들에게 맞춰주고, 나만 이해하고, 나만 희생하며 사는 건 이제 더 이상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더 하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니 잘한 일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이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정도였다.

시행착오라고 해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래서 지쳤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또 다시, 번아웃이 왔다.

이번에는 삶 자체에, 인생 자체에 번아웃이 왔다.


무기력해졌다.


살고 싶지 않았다.


살고자 나와 제대로 마주하고, 나를 바꾸고, 가족과 부딪혀보자고 앞으로 나아가고,

심지어 삶에 위협을 느껴 두려움에 떨었으면서


번아웃이 오면서 나는 순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9살 이후로 그렇게 명확하게 생각을 한 건 오랜만이었다.


(다시 번아웃이 오기까지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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