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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Apr 03. 2024

끝났다.

과연 끝일까?

(기억하고 있는 대화내용은 세월에 의해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 있음)


"가족이 너를 망친거네. 사실 네가 제일 정상인데, 네 가족이 이상한 거야. 그들끼리 똑같고 너만 다르니까 너만 이상해지는 거지. 넌 가족이랑 연 끊어야겠다."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자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 건.

(친구로서) 정말 좋아했던 동성친구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을 했더라도 그렇게까지 자세히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그때 왜 그렇게 분위기가 흘러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려 술술 털어놨다.


현재 애인을 제외하면, 성격이 바뀌기 전에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난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고 난 뒤에도 불안했다.

누가 이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그럴까봐 불안했다. 그 언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불안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점점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내 가족이 이상한 걸까.

내 잘못이 아니라 나를 그렇게 몰아가고, 나한테 상처를 준 가족들의 잘못인 걸까.


그때만 해도 나는, 가족을 원망할 생각도 못했다. 그저 가족을 감싸고, 가족의 입장을 해명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 언니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말하는 거니 나에게 유리하게 말했을 수도 있고,

언니는 나와 친했기 때문에 내 편에 서서 생각할 수 밖에 없으니.


또 아무리 그래도 연을 끊어야 한다는 해결법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를 제대로 마주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알게 됐다.


결국 망가지는 건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우울증과 불안증에 걸려 있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진료를 받으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자꾸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숨쉬기 어려웠다.

자꾸 위가 아파서 중학생 때 위내시경을 받아보니 신경성 위염과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내가 사라져도 가족들은 빈자리를 느끼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빈자리를 느껴도 내가 필요해서, 아쉬울 때만 느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난 죽어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진짜 가족들이 말하는 대로 난 점점 예민해지고, 부정적으로 되어가고, 유난 또는 유별난 특이한 사람이 되어가는 듯했다.


참 이상한 건, 그런 성향 때문에 어떤 무리에서는 내가 갈증을 느끼고, 지루함을 느끼거나 튀어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 틈에 가면 오히려 내가 너무 평범해졌다. 그래서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작아졌다.


어떤 무리에 가면, 너는 꼭 하다 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더 예리하게 보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된다고.

뭐가 너를 막고 있는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나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 내게 한 가족들의 말들과 인식이라는 벽이었다.


그래서 항상 튀지 않으려고 했고, 내 생각이나 의견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따라갔다.

항상 말하기 전에 내가 이상해보일까봐 두려워 했고, 자기검열을 많이 했다.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건 좋지만, 과도하게 많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상대의 반응을 예상해보고, 눈치를 보기 급급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늘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미안해하고, 자책만 했다.


그 벽은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도, 일 할때도, 인간관계에서도 안 좋은 영향을 줬다.

뿌리부터 단단하게 내려지지 않은 채로 자란 결과로 힘든 일을 겪으면 회복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벽 때문에 어떤 무리든 완전히 적응 못하고, 미운오리새끼만 되었다.


어쩌면 내 재능도 가족들에게 눌려, 나오지 못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가족들은 내게 네가 마음이 여린 거라고 할 거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여린 것도 부모가 물려주셨으며, 마음 여린 게 단점도 아니고 잘못 된 것도 아니다.


아니면 내성적이라서 그런 거라고 나를 탓하겠지.


하지만 무조건 외향적인 게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내성적인 성격도 좋은 성격이고, 장점과 재능이 많은 성향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오히려 요즘은 내성적인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인기가 더 높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내성적인 것도 좋은 성격이고, 외향적인 것도 좋은 성격인 것처럼

멘탈이 강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꼭 옳은 게 아닌데....


나도, 그렇게 반응하는 가족들을 '뭘 잘 몰라서, 무식해서 그러네' 라고 단정지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왜 모를까.


무엇보다 부모는 늘 싸우기 바쁘고, 화목하지 않고 사랑이 부족한 집안 환경에

아무도 내편이 없는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강하게 자라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버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다.


나는 버틸 수 있는, 의지가 되는 누군가가 없었음에도, 계속되는 힘든 상황들 속에서도 1%의 빛을 찾았다.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그럴 수 있다며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거다.

그게 스스로를 압박하고, 억누르게 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


내가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고, 넌 똑똑하고 말을 잘하니까. 

넌 원래 예민하고 부정적이니까. 

넌 원래 유별나니까.


그런 식으로만 받아들이고,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내 마음을 보려 하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은 내 입을 닫게 했고, 마음까지 닫게 만들었다. 


그렇게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원망과 분노, 미움을 직면하고

내가 가족들에게 갖는 감정들을 인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내가 영영 가족들을 안 보고 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과정을 거친 후, 남은 건 이해와 사랑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셨고, 부모가 처음이니 그럴 수 있어.'

'동생은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랐고, 아직 나보다 5년이나 어리니 깨닫는 속도나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어.'

라는 이해를 로봇처럼, 의무처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하게 됐다.


가족과의 추억으로 원망, 분노, 미움을 애써 묻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용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으로 삼게 됐다.


원망하고, 화내고, 미워한다고 해서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얼만큼 가족들을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그토록 사랑했으니,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으며

그토록 사랑하니, 화가 나고 서운하고

그토록 사랑하니,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었다.


알고보니 나는 가족에게 기대를 갖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내가 마음을 열고 노력하면 우리 사이는 풀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린 이야기하고 서로 맞춰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인지능력을 갖고 있으며,

모두 잘 살아있고, 연 끊지 않고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니 우리는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비로소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는 서른에 끝이 났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내 머릿 속에 남아 있었던 블랙아이스 같은 빙판도 감쪽같이 녹아있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활보하고 다녀도 넘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해피엔딩이었다.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그땐 눈도 빙판도 없는 내 머릿 속 세상에 정신이 팔려,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바람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 거센 바람에는 '회피의 대가가 아직 남아있다. 중요한 게 남았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를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어떤 오디오클립에서 인생은 다 성장했다고 끝났다고 생각할 때 얄밉게 (배신) 뒷통수를 친다는 식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다 성장했다고, 다 끝났다고 오만을 떨다가 인생에게 크게 뒷통수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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