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활발하고, 많은 사람들 틈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을 리드하고,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받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아빠의 이미지는 사람들을 잘 이끌고 베푸는 걸 잘 하고 장난기도 많고 편안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모두 아빠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본인에게 자랑거리였으며, 우리에게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가 매우 많았다.
난 아빠의 그런 자랑거리를 들을 때마다 슬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슬픔은 점점 원망과 미움으로 변했다.
남들한테만 좋은 사람이면 뭐하나, 가장 가깝고 소중한 가족한테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소중한 사람이 아닌 다른 타인에게 즉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다 부질없는 거 아닐까.
남들한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시간에 가족을 잘 챙겨주길 바랐다.
남들에게는 관심도 많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면서
엄마에게는 관심도 없고,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많이 가지지 않는 아빠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남들에게 진심으로 베풀어서 그만큼 도움도 받고, 이 정도면 인생 잘 사는 거라고 의기양양해 하는 아빠를 볼 때마다 가족에게나 진심으로 베풀어주지 라는 불만만 쌓였다. 그리고 인정욕구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보였고, 그건 진심으로 베푸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그 말이 싫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곁에 사람들이 많은 거만 생각할 뿐, 옆에 엄마가 그리고 우리가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건 알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자랑은 입에 달고 사시면서 엄마의 고생은 인정해주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아빠가 미웠다.
나와 밥을 먹으러 가거나 엄마와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아빠의 시선은 늘 남들에게 향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오나 안 오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아는 사람이 오면 그 사람과 대화하느라 바빴다.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혼자 식당에 온 것 같았다.
같이 있는데, 외로웠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밥 먹을 땐 말하는 거 아니라며 대화도 안 하고, 휴대폰만 보고 후다닥 다 먹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리는 아빠에게 서운했다.
함께 살고, 같이 있는 데도 외로운 기분. 혼자인 기분. 나보다 남이 우선시 되는 기분.
내가 이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의 기분.
이런 기분을 엄마는 늘 느꼈을테고, 반복되면서 아무렇지 않아진거겠지.
아빠는 모르실거다. 아빠의 시선을 어떻게든 엄마와 나에게 향하도록 안간힘을 썼던 걸.
대화를 해보려고 질문도 해보고, 더 먹고 싶은데 속도를 맞추기 힘들어 남겼던 걸.
빨리 먹느라 맛도 못 느끼고 허겁지겁 먹느라 정신 없었던 걸.
남들한테 분위기메이커이고, 장난도 잘 치는 사람이라고 자랑할 때마다 그럼 그 모든 게 우리한테만 보여줬던 특별한 모습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남들한테 인정받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외로움에 가슴이 시렸다는 것도... 모두 모르실거다.
나는 아빠가 밖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가족에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인 게 더 중요했다.
아빠가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 남들에게 인정 받는 것으로 채우려 할 수도 있다며 아빠를 이해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운하고 미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늘 누군가와 엄마를 비교하고, 엄마에게 살림 뿐만 아니라 돈도 잘 벌길 원하는 아빠가 미웠다.
엄마에게 불만을 품을 시간에 능력 없는 남편 만나서 고생하는 엄마를 인정해주고, 고마워하고, 아껴주고 사랑해줬으면 했다.
엄마에게 살 빼라며 게으르다고 구박하고, 스킨십만 요구하는 아빠를 보면서 내가 같은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꼈다.우울증 걸린 엄마를 방치하고, 사회활동을 빙자하여 밖에서 즐길 거 다 즐기며 엄마를 혼자 뒀다.
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고, 나들이를 가고, 산책을 하는 시간은 극히 드물었다.
아빠는 엄마 그리고 우리들한테 먹고 살게 해줬다고 생색내고,
이 정도면 엄마와 우리한테 잘 한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빠를 볼 때는 화가 났다.
그런 아빠의 행동과 말을 겪으면서 난 자연스럽게 남자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결혼하면 남자는 다 그러겠지.
여자한테 바라는 것만 많고, 외롭게 하고, 아내가 아니라 엄마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무시하고, 존중해주지 않겠지.
몸매가 망가지고, 예쁘지 않으면 게으르다며 구박하겠지. 그 모습마저 사랑해주지 않겠구나.
자신은 사랑 받고 싶으면서, 먼저 아낌없이 사랑해주진 않겠지.
잘해주더라도 그 뒤에는 대가가 있겠지.
사랑을 줄 줄도 모르면서 받기만 원하겠지.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무의식중에 결혼은 안 좋은 거라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면서 우리 아빠 그리고 내가 자란 지역의 남자 어른들과 같은 사람은 정말 극소수이며, 그렇지 않은 남자들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연애를 한 후에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편견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나도 몰랐던 결혼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드러났다.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다시 주춤했다.
아무래도 가족의 영향이 크다보니, 아빠를 볼 때마다
내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다시 결혼과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