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늘 내게 남에게 베풀어라. 사람을 많이 사귀어라.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아빠의 시야에서 편견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겐 독이었다.
남들이 너를 좋게 보고,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꼭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남 의식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너의 배우자에게, 가정에게 쏟아라. 그것이 진짜 인간관계를 잘 하는 거다. 라는 가르침을 주시길 바랐다.
그랬다면, 남 눈치를 덜 보지 않았을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까봐,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워지면 또 부담스러워서 어쩌지 못하는 내가 되진 않았을 거다.
그랬더라면.....
모범생 반장이라고 선생님한테 이쁨 받아서 반 친구들이 나를 질투하고 따돌렸던 그 사춘기 시절의 중1때,
혼자 견디지 않고 부모님한테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2가 되면서 반장을 하지 않으니 따돌렸던 친구들이 내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을 때도 당당하게 할 말을 했을 것이다.
사실, 아빠에게 듣고 싶었던 건
"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도 넌 좋은 사람이다. 그건 아빠가 안다."
"제일 어려운 게 가족에게 잘하는 건데 넌 그걸 잘 해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넌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에 휘둘려 너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말이었다.
명랑하고, 쾌활하고, 밝게 자라야 한다. 항상 좋게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웃어야 한다.
그런 사람으로 자라는 게 아빠의 바람이었다.
그런 사람으로 자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게 오히려 내게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그 바람에 맞추어 살다보니 회피형 인간이 되어있었다.
직면해야 할 문제나 갈등까지 모두 다 좋게좋게, 긍정적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내 마음이 어떻든 항상 웃었다.
따돌림을 당하던 그때도 늘 웃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실실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내면은 어두컴컴한데 밝은 사람인 척, 가면을 썼다.
아빠는 그것만 가르칠 게 아니라, 먼저 나의 기질을 파악했어야 했다.
나를 인정해주고 공감하고, 수용했어야 했다.
명랑하고 외향적인 성격만 좋은 게 아니라 내향적인 성격도, 차분한 성격도 좋은 거라고 가르쳤어야 했다.
모든 일에 좋게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문제나 갈등을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쳤어야 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성숙하게 푸는 방법을 알러줬어야 했다.
힘들 때는 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어야 했다.
부정적인 감정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니 받아들이고, 건강하고 올바르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어야 했다.
억지로 끼워 맞출 게 아니라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 장점을 재능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키워줬어야 했다.
본인의 기준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나의 의견과 생각을 재단하지 않고
나를 그런 이상하고 못난 사람을 몰아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빠에게 그리고 엄마에게도 나의 상처들을 좀 더 일찍 꺼내 보였을 거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만 맴돌던 나의 외침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사랑하는 사람인 부모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거다.
그랬다면,
나는 덜 아팠을 것이며
외롭고 고독하게 그 많은 생각과 감정과 상처를 삼켜내지 않았을테다.
나 마저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