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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Sep 23. 2020

유일한 방법.

but. 쓸 수 없는 방법.

스물여덟의 나는 다가오는 서른이 미치도록 싫었다. 

부담되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십대가 곧 끝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누가 몰아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조급해하는 성격인 나는 그만큼 더 조급해졌다. 

안 그래도 머릿속에는 큰 눈덩이들로 가득 차 있는데도 새로운 눈덩이들을 만들고, 부풀렸다. 

덕분에 머릿속은 눈덩이들로 꽉 차 있어서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았고,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버틸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지자 처음으로 생각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고, 무작정 버렸다. 

마침내 눈덩이들은 모두 부서졌고, 비로소 그 곳은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하게 가득 찬 눈덩이들 때문에 답답해보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평온해보였다. 

그러나 마음은 그만큼 평온하지 않았다. 두통도 여전했다. 왜일까. 

이유는 사방으로 흩어진 눈들이 하나도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켜켜이 쌓여있어서였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눈이 녹듯이 내 머릿속에 남은 저 눈들도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놔뒀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녹을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을 쐬어주기도 하고, 어루만져주기도 하면서 어르고 달랬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들은 녹지도 않고, 더 단단해졌다. 고민 끝에 방법을 찾았지만 실행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눈들을 녹여 감쪽같이 없애줄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처럼 여기저기 찾아 나섰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구석구석을 찾아도 그 방법을 대신할 것을 찾지 못했다. 

이것은 곧 유일한 방법이며,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외면했다.

 

솔직하게 나를 마주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녹지도 않고 단단해져가는 눈들을 한 번에 없어지게 해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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