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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Sep 25. 2020

내가 졌다.

(서)른춘기 그리고 늦깎이 방황

이런 게 서른에 맞이한다던 사춘기인가 싶었다. 생각과 고민은 더 늘어가고, 불안하고 초조했다. 

꿈도 이루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름 나쁘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서글프고, 지치고, 힘들게 느껴졌다. 겁이 많아도 하고자 하는 일 앞에서 만큼은 겁이 없었는데, 모든 게 다 무서워졌다. 

하고 싶은 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도 모자라서 뒷걸음질 쳤다. 


서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몸도 아는 건지, 체질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먹어도 살 안 찐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쏙 들어갈 만큼 먹는 대로 살로 가는 체질로 바뀌었다. 체력이 없어도 악바리로 버티긴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들어졌다. 내 몸을 막 쓴 대가로 여기저기 아픈 곳도 늘어갔다. 다치고 난 뒤에는 더 심해졌다. 결국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운동에도 조금씩 눈길이 갔다. 피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지하에 살면서 얼굴은 물론이고 몸은 난리가 났다. 여기에 아주 오랫동안 불규칙한 패턴, 수면부족을 달고 사는 것도 한몫했다. 스킨, 로션을 바르는 것도 까먹는 날이 많을 정도로 피부를 대하는 나의 잘못된 태도까지 겹쳐져서 완전히 망가졌다. 나름 괜찮은 피부 유전자를 물려받았을지라도 한 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평소 외모에 자신이 없는 편이었는데, 그나마 좀 괜찮은 부분들을 잃고 나니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겉모습부터 내면의 모습까지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래 친구들이 진로 고민을 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는 난 이미 그 고민을 끝냈다면서 하지도 않더니, 다 늦어서 길을 잃고 헤맸다. 이십 대 초중반에도 비슷한 순간이 잠깐씩 있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목표가 있었다. 과정과 결과에 따른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다. 방황이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방황이었기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여행 같은 방황이었다. 

그때와 다르게 서른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맞닥뜨린 방황은 목표가 없어서 방향도 알지 못했다. 막막했다. 혼자 하는 늦깎이 방황이라 외로웠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못했고, 동질감도 없었다. 진로 고민과 방황은 이미 끝난 채, 현재와 미래를 잘 다져놓고 있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나만 혼자 방황했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나름 제일 먼저 시작하고, 앞으로 나아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뒤쳐진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정상이 코앞인 오르막길을 걷고 있거나 드디어 정상에 올라서서 ‘야호!’하고 있는데, 나 혼자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더 조급해져서 길도 모르면서 무작정 뛰어갔다. 

그러다 더 헤매고, 다치기만 했다. 빨간불인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다가 더 가지 못하고 가운데에서 발만 동동 대고, 경적 소리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로 인해 겁을 잔뜩 먹고 주저앉은 것만 같았다. 


(서)른춘기와 늦깎이 방황과 맞서기에는 이미 내가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진즉에 알지 못했다. ‘이것 또한 대가인가?’ 켜켜이 쌓여 있던 머릿속의 눈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나에 대한 사랑이 조금은 있었던 건지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이대로 더 놔뒀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반강제로 그 방법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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