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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Oct 06. 2020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이.

반강제로 일을 하거나 습관을 고치거나 하면, 괜히 딴짓을 하고 싶고 꾀를 부리고 싶다. 진도도 더디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반강제로 시작한 나와 마주하기도 그랬다. 스타트를 끊어놓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가기도 했다. 하는 척이라도 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대충 살자라는 마음으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한테 꼭 필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만두지는 못했다. 그럼 빨리 해치워버릴까 했지만 그럼 분명히 나중에 대가가 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대가를 감당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뺀질뺀질거리기는 그만두고, 처음으로 나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을 가져봤다. 이미 변질되어버린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관심을 갖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생각을 해봤다. 어떻게 해야 진심으로 나를 봐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이 좋겠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크기가 커져가고 있는 시점의 시선으로. ‘무엇을 하든 예뻐해 줄게.’라는 마음으로 다시 나를 봤다. 온몸이 근질거리고 기분이 이상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선 하나 달리 했을 뿐인데 안보이던 게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됐다. 제일 처음으로 본 것은 늦깎이 방황과 (서)른춘기에 주저앉게 된 원인과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무너진 현재의 내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무너져 있는 현재의 내 모습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아니 외면하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나약한 내가 무척 창피했기 때문이다.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정말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큰 시련을 겪은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까지 무너져야만 했나라며 나를 질책했다. 그러다 아차 싶어 다시 하트 뿅뿅하는 시선으로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더니 다른 이에게 했던 위로의 말들을 나에게 하게 됐다.


사람마다 힘든 정도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크게 생각하고 무너지는가 하면,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문제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창피한 게 아니다. 그렇게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건 처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말고도 다른 이들에게 위로의 말은 수도 없이 했는데, 한 번도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해준 적은 없었던 것이다. 위로의 말 대신 비난하는 말만 하고, 괜찮은 거라며 마음대로 단정 지었다. 아무리 내 감정이, 마음이 내 것이라 해도 멋대로 결정하고,  재단하면 안 되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서로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만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왜 진즉에 그러지 못했을까.

좀 더 일찍....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이 나를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이것이 나를 (서)른춘기와 늦깎이 방황 앞에서 완전히 주저앉게 만든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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