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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Nov 04. 2020

과거도 case by case.

제대로 진짜 나와 마주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위로도 해줬다. 그러자 녹지도 않았던 눈이 반 정도 녹아 없어졌다. 나머지 반은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굳이 지나간 것을 꺼내야만 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드라마나 영화의 플롯이 생각났다. 대부분 작가는 작품 속 캐릭터를 그릴 때 어릴 때의 상처나 주변 환경을 성인까지 연결시킨다. 그래서 인물의 서사를 그릴 때 대부분 어릴 적의 이야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받은 상처는 평생 간다는 내용의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무조건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잊어버리라는 말은 상대방의 상처에 대해 무책임한 발언인 것이다. 


물론 좋게 생각하고,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다. 

특히 상처에 대해서는 과거일 뿐이라며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내가 준 상처에 힘들어하는 상대를 위해. 그 사실을 인정해야하며 더 이상 듣기 좋은 말들로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피하게 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터지게 되어 있다. 

이건 곧 나의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때때로 조금씩 터져 나온 감정과 상처들이 있긴 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 넘어갔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자 비로소 과거의 나와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외면하고, 묻어왔던 시간과 깊이만큼 현재의 나와 마주하는 것보다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마주한 과거의 나를 치료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끔씩 과거의 기억을 꺼낸 적은 있었지만, 이토록 세밀하게 그리고 편견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고, 인정하기 싫은 그러나 인정해야 하는 나의 감정들까지 모두 느껴졌다. 혼란스러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스물아홉의 나. 

내가 나를 보는 달라진 시선 덕에 놓쳤던 것을 보고, 몰랐던 것을 알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깨닫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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