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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Nov 04. 2020

내가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타임머신이 나오면 제법 화려한 CG가 나오며 과거로 돌아간다. 처음 타임머신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타임머신을 탄 주인공은 당황하거나 좋아한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달랐다. 내 타임머신은 화려하지 않았다. 신기해하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내가 스스로 만든 타임머신이기에 그럴 것도 없었다. 반강제로 시작한 것만큼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두려웠다. 어떤 것들을 얼마나 많이 마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볼품 없는 타임머신을 타고 처음으로 간 곳에는 초등학생의 어린 내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현재의 나 보다는 밝았고, 명랑했다. 내성적인 지금의 나와는 반대로 외향적이었다. 앞에 나서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고, 여러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전학을 많이 다녔음에도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을 잘 했고, 이별과 만남때문에 아쉬웠던 적은 있어도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이처럼 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을 잘하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그 때의 나는 상대방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는 법을 몰랐다. 상대의 경계를 풀고, 다가가는 방법은 터득했지만 나의 경계를 완전히 풀고 상대와의 거리를 더 좁히는 법은 몰랐다. 어쩌면 알았지만 모르는 체 했을 수도 있다.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고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가까워지려고 하면 뒤로 물러섰다. 나에게 너무 많은 진심을 표현하는 친구들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 친구들은 그만큼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무엇이 겁이 났던 것인지 그 친구들의 마음을 받아주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좀 덜 좋아해주는 친구들의 곁에 더 오래 있으려고 했다.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발표를 재미있어 했다. 토론하는 것도 좋아했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듣고, 다양한 사람들이 내는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우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에게 내 감정이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위로만 할 뿐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내 감정이나 마음에 대한 질문을 듣거나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피했다. 하더라도 다 말하지 않거나 한계를 넘었을 때 표현했다. 그래서 주위에 친구는 많았지만 깊은 관계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항상 같이 붙어 다니고, 제일 친한 친구라고 서로 말하는 그런 친구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도 얼마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서 붙어있는 친구와 깊은 마음까지 공유해서 곁에 있는 친구는 미세하지만 확실히 달랐다. 난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친구라면 그런 부분까지 감싸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친구들은 서운함을 이야기해도 마음을 다 내어주지 않는 나에게 실망하여 떠나기도 하고, 곁에 남아 있긴 해도 전만큼의 사이는 되지 못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스물아홉의 내가 다시 보니 친구들이 서운해하던 마음 뒤에 순수한 진심이 보였다.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인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도 물었다.


“너도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질문에 친구의 눈을 바라봤다. 한껏 기대한 눈빛이었다.


“으응.”


“와, 진짜? 누구야? 말해줘. 나도 말해줬잖아.” 

    

누구냐는 질문에 한 친구의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 대신 이미 인기가 많은 친구의 이름을 말했다. 대답을 들은 친구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거짓말을 눈치챈 듯 보였다. 서로 비밀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보다 훨씬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았고, 당사자에게는 표현하지 못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나 00이 좋아’ 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었다. 그 사실을 누군가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폭로한 적도 없었다. 어느새 나는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친한 친구에게 고백하는 것도,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나의 고민도 모두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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