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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Aug 31. 2021

오브뮤트의 슬리핑듀

후회 없는 슬리핑듀와의 만남이었다.

테라스가 있는 집, 건물 안 정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휴가시즌마다 SNS에 많이 올라오던 여행 사진이나 후기는 보기 어려워졌다. 핸드폰처럼 필수품이 된 마스크 때문에 바깥 공기를 제대로 맡을 수 없어졌다. 이제는 도시의 탁한 공기마저도 그립다. 


나도 요즘 같은 일상에 지쳐있다. 예전처럼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해서 너무 답답하다. 밖에 나가면 불안함이 기본으로 깔린다. 지치고 답답함, 불안함이 잠드는 순간까지도 지속된다. 불면증이 더욱 심해진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요즘 같은 일상도 한몫했다.


잠을 제대로 못자니 피로가 쌓이고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체력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내가 브랜드 오브뮤트의 슬리핑 듀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답답함을 해소시켜주고 편히 자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여서 얼른 만남을 청했다.





오브뮤트(Of-mute)는 ‘무음의’라는 뜻으로 향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향 전문 브랜드라고 한다. 처음부터 스토리에 어울리는 향을 위해 합성 혹은 천연향료의 비율을 조정하고 선택하는 ‘단일향료 조합’ 방식으로 조향한다. 오브뮤트는 향을 맡는 사람들에게 '향기 무언극을 선물한다. 슬리핑 듀(Sleeping dew)는 오브뮤트의 첫 번째 향기 무언극이다. 


슬리핑 듀(Sleeping dew)의 탑노트는 민트, 소나무, 허브향이며 미들노트는 은방울꽃과 아침이슬이다. 라스트노트는 시더우드와 살결 같은 머스크이다. 여기서 미들노트 즉 향의 메인인 은방울꽃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아폴론은 님프들이 부드럽고 향긋한 땅을 밟길 바라는 마음으로 땅에 은방울꽃을 깔아주었다고 한다. 


오브뮤트는 지친 하루의 끝에서 생기를 주고, 편안한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향에 담았다. 


아폴론과 같은 오브뮤트의 따뜻한 마음에 은방울꽃의 ‘희망,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꽃말까지 더해져서 슬리핑 듀를 만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서둘러 슬리핑듀가 들어있는 택배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슬리핑듀가 아닌 작은 엽서였다. 





엽서에는 초록빛으로 물든 길 끝에 예쁘고 아담한 집이 보였고, 집 뒤로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집은 단층구조이며 다락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 안은 보이지 않았지만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대충 예상이 갔다. 순수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엽서를 한동안 뚫어지게 보다가 작은 상자 안에 있는 슬리핑듀를 꺼내 허공에 뿌려 킁킁댔다. 


잊고 있던 숲의 냄새가 자연스럽게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상쾌했다. 피톤치드를 온 몸에 받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은방울꽃인지는 모르겠지만 꽃향기와 함께 민트향도 났는데 서로 잘 어울렸다. 


향을 맡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향이 좋은 따듯한 꽃차나 허브차를 마셨을 때 느꼈던 편안함과 비슷했다. 이름처럼 자기 전에 뿌리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밤이 되고, 서둘러 침구에 슬리핑듀를 뿌리고 누웠다. 향이 나에게 “수고했어. 오늘은 좋은 꿈을 꿀 거야. 기분 좋은 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향기가 내 안에 완전히 스며들자 극장에서 보던 대형 스크린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극장 안이었고, 나 홀로 무대 앞 정중앙에 앉아있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다시 정면을 보니 대형 스크린은 숲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늘은 맑고 쾌청했으며, 햇살이 매우 밝았다. 


아침을 알리는 경쾌한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극장 안에 퍼진 숲 속향이 당황한 나를 진정시켜줬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나무 잎의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 때, 스크린 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숲 속 길을 따라 걸었다. 


한 참을 걸었을 때, 소나무들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작은 호수가 보였다. 그 옆에는 은방울꽃이 가득했고 잠든 님프들이 있었다. 은방울꽃은 사진으로만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여리여리하고 청초했다. 나는 꽃에 맺힌 이슬을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이슬이 톡 하고 터지면서 꽃향기가 진해졌다. 처음 맡아보는 은방울꽃의 향기는 겉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다. 


향기에 한껏 취해있을 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님프들 중 하나가 잠에서 깨 몸을 일으켰다. 나는 홀린 듯이 님프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나머지 님프들도 하나 둘씩 잠에서 깼다. 나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한 님프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님프의 손은 이슬이 묻어 있어서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잡은 손에서 올라온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이 내 몸을 감쌌다. 


나는 님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숲 속 깊은 곳까지 걸어가니 엽서에서 봤던 집이 보였다. 님프는 나에게 집을 향해 손짓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작별인사를 나눈 후 앞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집 문 앞까지 도착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는 것 같더니 힘차게 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집 안은 아늑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구석에 있는 사다리를 이용해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다락방의 층고는 작은 키의 내가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적당했고, 가운데에 싱글 침대가 놓여 있었다. 은방울꽃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금세 잠든 나는 좋은 꿈을 꾸는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향에 대한 소개와 엽서를 보고, 향을 맡은 후 내가 펼친 상상이지만 오브뮤트의 향기 무언극을 직접 봤다고 여기고 싶다. 향기 무언극으로 인해 불면증은 치료되지 않았지만 전보다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침구에 남아있는 향을 맡으면서 눈을 감으면 느껴지던 상쾌함을 잊을 수가 없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내 몸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좋은 향을 맡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그 기분으로 잠을 청할 수 있게 돼서 기뻤다.





슬리핑 듀는 상쾌함과 편안함이 매력인 향이라 자연의 냄새가 그리울 때, 유난히 지친 하루에 생기가 필요할 때도 손이 갈 것 같다. 침구 말고도 신체를 제외한 물건, 공간, 섬유에 뿌려도 된다고 한다. 나처럼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거나 relax가 필요하다면 슬리핑 듀를  만나 봐도 좋을 것이다.




'향기 무언극 : 무언극은 스스로를 표현할 때 대사 없이 몸짓으로 하는데, 향기 무언극은 향기를 이용한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5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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