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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탄생

이야기의 탄생

by 결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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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무리의 호미닌들이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들은 연약한 육체를 가졌지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을 이끌었던 것은 슬기였습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무기삼은 것도 슬기였지요. 그들 가운데 한 무리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생인류, 곧 호모사피엔스가 되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슬기가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형제 호미닌들이 가진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슬기는 현생인류의 이름이지만 우리만의 것은 아닙니다. 태초부터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본질적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엄마의 젖을 빠는 방법을 이미 익히고 세상에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새끼사슴은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태어납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거북이는 바다를 향해 달려갑니다. 젖을 빠는 지식은 뇌의 작용 이전에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근본정보입니다. 자연은 생명 앞에 끊임없이 선택을 제시합니다. 때로 고달프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선택의 시간들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의 탄생은 곧 슬기의 탄생이었던 것이지요.


최초의 생명이 태어난 후 오랜 시간 지구는 다양한 생명들이 자신들의 슬기를 뽐내는 무대가 되어주었습니다. 땅속을 헤집는 지렁이와 두더지, 들판을 달리는 얼룩말과 기린들. 어떤 종들은 슬기를 따라 번성했고 어떤 종들은 슬기를 따라 실패하고 사라져 가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지구는 생명의 슬기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현생인류는 모든 지구상의 생명 중 슬기에 가장 특화된 생명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칠흑과 같은 어둠. 바람은 거칠고 폭우가 쏟아집니다. 한순간 하늘과 땅이 환하게 밝혀지고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눈앞에 서있던 커다란 나무가 섬광 속에서 터져버렸습니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큰 소리에 그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왜 하늘이 분노를 했는지, 왜 어떤 날들은 상냥했다가, 왜 어떤 날에는 분노하는지’.


문학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지식의 방법입니다. 천둥은 마침내 이야기가 됩니다. 신화는 인간이 좋아하는 지식의 방법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치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제우스와 헤라가 부부싸움을 한다’고 소리치면 함께 낄낄거리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겠지요.


인류는 자신을 미지의 어두움에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때로 주인공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 에피소드를 빼거나 더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모으고 가공을 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진실에 다가갔습니다. 저들의 삶은 고달팠지만, 이야기가 있어서 풍성했습니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우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지식은 머무르지 않습니다. 수도 없는 과정이 반복되며 결국 인간은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지식은 이야기를 넘어 철학과 과학 예술과 규범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인류는 그 지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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