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지식의 기원과 슬기의 탄생

이야기, 내러티브

by 결휘

2장. 지식의 기원과 슬기의 탄생

서문에서 우리는 인류가 '슬기'를 통해 지구의 우세종으로 발전했으며, 지금 그 슬기가 혼란 속에 위기를 맞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슬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인류의 삶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어 왔을까요?


오래전 한 무리의 호미닌(사람족 (Hominin)) 들이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들은 연약한 육체를 가졌지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을 이끌었던 것은 슬기였습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무기삼은 것도 슬기였지요. 그들 가운데 한 무리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생인류, 곧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슬기가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형제 호미닌들이 가진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슬기로운 인간(호모 사피엔스)’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슬기는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본질적 기능이었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엄마의 젖을 빠는 방법을 이미 익히고 세상에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새끼사슴은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태어납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거북이는 바다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러한 지식은 뇌의 작용 이전에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근본정보입니다.


자연은 생명 앞에 끊임없이 선택을 제시합니다. 때로 고달프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선택의 상황에 답을 찾는 것이 슬기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슬기의 시간들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생명의 탄생은 곧 슬기의 탄생이었던 것이지요.


최초의 생명이 태어난 후 오랜 시간 지구는 다양한 생명들이 자신들의 슬기를 뽐내는 무대가 되어주었습니다. 땅속을 헤집는 지렁이와 두더지, 들판을 달리는 얼룩말과 기린들. 어떤 종들은 슬기를 따라 번성했고 어떤 종들은 슬기를 따라 실패하고 사라져 가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지구는 생명의 슬기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현생인류는 모든 지구상의 생명 중 슬기에 가장 특화된 생명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칠흑과 같은 어둠. 바람은 거칠고 폭우가 쏟아집니다. 한순간 하늘과 땅이 환하게 밝혀지고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눈앞에 서있던 커다란 나무가 섬광 속에서 터져버렸습니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큰 소리에 그들은 두려워 떨었지만,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왜 분노를 했을까? 왜 어떤 날은 상냥했다가, 어떤 날은 분노하는 걸까?'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인간 지식의 시작이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지식의 방법입니다. 천둥은 마침내 신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덕분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치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죠. 누군가 ‘제우스와 헤라가 부부싸움을 한다’고 소리치면 함께 낄낄거리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겠지요. 이야기는 인간이 좋아하는 오래된 지식의 방법입니다. 고대인에게 신화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고 전승하는 사실상의 ‘이야기 기반 지식 체계’였습니다.



먼 훗날,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기도 전에 동양의 어떤 이가 토끼 한 쌍을 그 달에 풀어놓았습니다. 떡방아를 찧던 토끼들이 어찌 됐는지, 그 후의 이야기는 알지 못합니다. 아폴로 우주선이 그곳에 토끼가 없다는 것을 알려왔지만, 어떤 이들은 아직도 둥근달이 뜨면 달토끼가 보인다고 합니다. 어찌 됐든! 어쩌면 달에 최초로 도착한 것은 암스트롱이 아니라 달토끼를 풀어놓았던 그가 아니었을까요?


달토끼의 이야기는 사실을 넘어서는 상상이 인간 지식의 중요한 부분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지식에 있어서 현실과 상상, 상상과 현실은 서로를 넘나듭니다. 인간의 경험은 아직 제한적이고 소박했지만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놓았습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시간들이 지났지만,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것은 한 번도 같은 하늘 아래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늘이 낯설지 않은 것은 하늘은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것이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먹이던 헤라 여신의 젖이 뿌려진 흔적이라 여겼습니다. 중국인들은 은하수를 헤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 번 건널 수 있는 낭만적인 강이라고 이야기했지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신화는 그저 상상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정보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해왔습니다.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수천, 수만 년 동안 유효했던 ‘지식’의 방식입니다.


어느덧 인간 유전자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성이 새겨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해 왔습니다. 아이들은 삼신할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생명과 탄생의 지식을 배웁니다. 울면 선물을 주지 않으시는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윤리를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과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아침드라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인 것이지요.


인류는 자신을 미지의 어둠 속에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관측 가능한 정보는 적었지만, 그것들을 모아 가공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진실에 다가섰습니다. 그들의 삶은 고달팠지만, 이야기가 있어서 풍성했습니다. 그 신화가 곧 지식을 전하는 오랜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러한 원초적인 슬기와 이야기 기반 지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지식 체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을까요? 그 구체적인 과정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 속에서 세상을 봅니다. 신화는 과학이 되었고,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여전히 세상을 이야기하고,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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