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감자탕과 사마천; 진실의 조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출연자의 지인들을 우리나라로 초대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예능 방송이 있었습니다. 미국인 가정이 출연한 에피소드 가운데 한 장면입니다. 가족은 감자탕을 추천받아 식당에 갔고, 음식이 나왔습니다.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 둘은 미국의 감자 스튜 같은 것을 기대했다가 돼지 등뼈가 잔뜩 나온 음식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아이들도 감자는 어디 있냐며 실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스튜디오에 있던 진행자 중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아, 그 감자가 그 감자가 아닌데." 그러면서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 등뼈의 골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행자는 "아직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라고 했고, 자막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달렸습니다. 스튜디오에 있던 다른 한국인, 외국인 출연자들도 탄성을 지르며 "아 그렇군요" 했습니다. 이쯤 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처음 감자탕을 팔던 식당들의 모습을 저는 기억합니다. 가게 앞에 양은으로 만든 큰 대야 같은 것을 놓고 돼지 등뼈와 감자를 거의 같은 비율로 쌓아두었다가 주문을 하면 덜어주는 식이었습니다. 감자국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모양새는 누가 봐도 감자국 또는 감자탕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감자의 양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등뼈를 듬뿍 더 많이 담는 쪽으로 음식이 변해갔습니다. 감자가 비싸져서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인지, 아니면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서 고기를 더 많이 먹게 되어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대략 10여 년 전쯤 어느 날 방송에서 감자탕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감자탕에 감자가 없는 이유를 아세요?" 하더니, "감자탕의 감자는 야채 감자가 아니라 등뼈의 골수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리둥절했습니다. 감자탕이 어려운 음식도 아니고, 무슨 감춰졌다 나온 비법의 음식도 아니고, 늘 그냥 감자랑 등뼈랑 우거지랑 저렴한 재료를 넣어서 만든 서민 음식인데 말이지요.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 등골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별 이상한 소리를 한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돼지 등뼈가 달고 맛있어서 원래 '감저(甘猪)'라고 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감저탕이었다가, 어느새 감자탕으로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돼지 등뼈 골수를 감자라고 한다는 이야기는 잦아드는 듯싶더니. 감자탕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최근에는 감자탕이 중국에서 양고기로 해 먹던 음식 '양 갈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경인선 건설 때 중국 노동자들이 돼지로 만들어 먹으면서 ‘돼지 갈자탕’이 생겼고, 거기에서 유래되어 ‘돼지 감자탕’이 되었다는 설이 떠돌기시작했습니다. 조만간 감자탕은 중국 요리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합니다. 이쯤 되면 일종의 '도시 전설'이라고 할 만합니다.
'도시 전설(urban legend)'은 실제의 사실이 아닌데 널리 알려지면서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사건이나 주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도시 괴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죠. 이는 역사 속 '민담'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 전설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민속학자 브룬밴드(Jan Harold Brunvand)가 1981년에 출판한 『사라진 히치하이커: 미국의 도시 전설과 그 의미』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선풍기를 켜고 자면 위험하다"라는 주장도 일종의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 도시 전설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집에 누가 선풍기를 켜고 자다가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매체를 통해 전해질 때,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죠. 선풍기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전해지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나마 요즘에는 근거 없음이 밝혀지고 여름이면 늘 사건 사고 이야기 가운데 전해지던 선풍기 괴담이 사라진 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지요.
감자탕의 이야기를 다소 길게 쓴 것은, 단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기억과 실제, 진실과 거짓, 그리고 더 거창하게 표현하면 역사와 시간에 대한 지식의 구조를 보여주는 좋은, 생생한 예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연코 진실은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을 바로 알기는 간단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상의 '도시 전설'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라고 믿는 사실 속에서도 유사한 재구성과 오해가 반복되곤 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이야기할 때,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이야기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그녀의 사치와 허영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죠. 특히 그녀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라고 한 말이 알려지면서, 당시 성난 민중의 분노를 더욱 들끓게 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단두대에서 반역과 사치의 혐의로 죽음을 당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왕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사실은 그녀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글이나 기사, 이야기들이 전해졌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던 이들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선전, 선동)였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이 그녀를 정치의 희생양이라고, 오히려 최후까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한 가련한 여인으로 등장시킵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싶을 때가 많습니다. 호기심 많고 늘 사실을 궁금해하는 피곤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듯한데, 제가 역사를 전공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정사와 야사, 정설과 민담, 모순된 기록의 충돌 사이에서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그 진실은 누구의 편인지, 어쩌면 한없이 고단하고 답답한 삶을 살지나 않았을까 싶습니다. 종종 어제 먹은 점심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제 일도 긴가민가 한 것이 솔직한 저의 수준입니다.
역사는 '사실'을 배우는 학문이 아닌 것이지요. 역사적 사실 또한 특정 관점과 의도에 의해 선택되고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감자탕의 유래처럼 사소한 사실부터, 한 왕비의 운명을 가른 거대한 역사적 사실까지, 우리가 '팩트'라고 믿는 것의 기반은 생각보다 위태롭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냉소적인 회의주의에 빠져야 할까요?
이처럼 진실이 불완전하고 재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사의 지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사실'을 암기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현재의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은 중국을 넘어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관으로 불릴 만한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역사서 『사기』는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역사서입니다. 대략적으로 기원전 3000년 전의 황제 시대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104년 ~ 기원전 86년경입니다. 그가 기록한 역사는 그의 시대를 기준으로 해도 이미 3000년 전(지금 기준 5000년 전)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마천의 『사기』를 위대한 역사서로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기록한 모든 사실을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태도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견디면서까지 기록을 완성하려 했던 그의 책임감, 수많은 자료를 교차 검증하려 했던 그의 노력, 그리고 역사를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공동체의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그의 사명감. 우리는 그의 글에서 완벽한 '사실'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조건'을 발견합니다. 결국 사마천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진리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완벽한 '팩트'가 아니라, 바로 이 '신뢰할 수 있는 태도' 그 자체임을 알려줍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팩트”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심리적 과정에 가깝습니다. ‘역사란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안타까운 목소리처럼, 가짜 뉴스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실을 바로 알기란 간단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 자신이 나와 다른 이들을 악마화하는 혐오의 시대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족, 바라기는 감자탕의 유래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이 바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순대가 빠진 순댓국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순댓국의 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