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온통 다 드러나 있습니다. 감춰진 것도 없고 그 어떤 ‘의지(Intent)’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주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힘은 ‘필연 (Necessity)’입니다. 이는 동양 철학에서 '억지로 하지 않음',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음'을 뜻하는 무위(無爲)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비록 그 모든 이유를 아직 우리는 온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그 하늘 아래 살아가면 될 것을, 인류는 늘 고개를 들어 우주를 궁금해 합니다. 때로 목숨 잃을 수 있는 위험마저 기꺼이 감내합니다. 사람이 가지 못하면 무인 우주선을 보내서라도 알고자 합니다. 어쩌면 마치 길을 가다 만나는 낯선 이를 경계하고 궁금해하는 것처럼, 지구라는 익숙한 공간 너머의 미지, 특히 ‘지구 밖 생명’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인류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요?
오퍼튜니티(Opportunity)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화성 탐사 로버입니다. 로버는 탐사하며 이동하는 로봇의 한 종류입니다. 2004년 1월 25일, 오퍼튜니티는 화성의 ‘메리디아니’ 평원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습니다. ‘오피(Oppy)’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이 로버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과거 화성에 생명이 존재했는지의 핵심 단서인 물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메리디아니 평원이 선정이 되었고, 오피는 평원 가운데 지금은 ‘이글 분화구’로 불리는 폭 22미터의 작은 크리에이터 안에 안착했습니다.
오피는 곧 자신의 성공적인 도착을 알리는 첫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마치 셀카를 찍은 것처럼, 자신의 태양 전지판과 착륙 지점인 이글 분화구의 안쪽 나지막한 비탈의 모습이 배경처럼 찍혀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마치 누군가 그 비탈을 넘어 로버를 찾아올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진 속 구릉의 모습이 지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 너머 그 어느 곳에도 이 귀여운 방문객을 맞아줄 이는 없다는 아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오퍼튜니티의 여정은 우주 탐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을 만큼 특별했습니다. 원래 주어진 임무 기간은 고작 화성일 기준 90솔(sol, 지구일 약 92.5일)이었지만, 오퍼튜니티는 모두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무려 14년 이상, 지구 시간으로 거의 15년이라는 경이로운 세월 동안 붉은 행성 위를 누비며 탐사를 이어갔습니다. 총 이동 거리는 마라톤 풀코스에 해당하는 45km가 넘었습니다.
그의 긴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05년에는 '연옥의 언덕(Purgatory Dune)'이라는 고운 모래 언덕에 바퀴가 빠져 꼼짝없이 몇 주 동안 사투를 벌이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화성에서의 기나긴 15년이란 어쩌면 매 순간이 투쟁이고 고난이었겠지요. 바퀴 하나가 모래에 파묻혀 헛돌기도 하고, 플래시 메모리 문제로 과거 탐사 기록을 잊어버리는 '기억 상실(amnesia)' 현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두 달간 이어진 거대한 먼지 폭풍 속에서 태양 전지판이 먼지에 덮여 동력이 거의 바닥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기적적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거대한 모래폭풍이 화성을 덮었습니다. 햇빛이 가려졌고, 배터리는 충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NASA는 수개월 동안 그를 깨우기 위해 수 천 번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퍼튜니티가 보내온 마지막 메시지는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았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요.” (My battery is low, and it’s getting dark.)였습니다. 마치 한 생명의 마지막 숨결처럼 들리는 이 메시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오피가 멈춘 그곳에 ‘인내의 계곡 (Perseverance Valley)’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2019년 2월 14일 ‘나사(NASA)’는 그의 임무가 종료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한 오랜 여정을 마친 로버가 지금 머나먼 화성의 계곡에 멈추어 있습니다. 오퍼튜니티는 그 자체로 생명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오퍼튜니티가 보내온 수많은 사진들에는 종종 그가 붉은 행성 위에 남긴 바퀴 자국들이 뚜렷이 찍혀 있었습니다. 때로는 삐뚤 비뚤, 때로는 맴돌듯이 어지러운 자욱들이 길을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고단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오퍼튜니티는 비록 생명은 아니라 할지라도, 생명이 듬뿍 묻어있는 로보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화성을 바라볼 때마다, 그곳에 홀로 남은 오피가 떠오릅니다. 생명의 흔적을 찾고자 했던 그가, 결국 자신이 그 증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에게 생명이 스며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단순한 물질의 조합을 넘어, 스스로를 조직하고 유지하며 번식하려는 강력한 '의지(Intent)'입니다. 이는 온 우주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힘, 곧 ‘필연’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질서를 창조하고 지켜내려는 집요한 반동이며 끊임없는 저항입니다. 그래서 생명이라는 현상은 고달픔이 기본 값인지도 모릅니다. 바람처럼 그저 불고 물처럼 흘러가고 싶어도, 우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생명만이 우주 전체의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 곧 엔트로피의 법칙에 맞서며 생명 질서, 곧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려 합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얻고, 환경에 적응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변화를 감내 합니다. 이 고달픔은 생명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존재의 조건입니다.
이런 생명이 택한 가장 강력한, 어쩌면 유일한 전략은 ‘다양성’입니다. 때로는 지구 전체가 얼어붙는 빙하기가 찾아오고, 때로는 대륙을 뒤흔드는 화산이 폭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룡 시대를 끝낸 소행성 충돌과 같은 대재앙이 닥쳐오기도 하는 등, 지구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이러한 극한의 조건 속에서 생명은 결코 한 가지 완벽한 정답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생명의 진화에는 더 이상 ‘발전’이라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 정답이었는지, 선택은 자연이 해왔습니다. 생명은 그저 “다양함”으로 대응했을 뿐인 것이지요. 마치 오래된 투자 격언처럼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슬기를 생명은 처음부터 가지고 이 지구에 등장한 것이었지요.
2010년대에 어느 날 외신은 ‘바나나의 멸종위기’를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현 지구상에 유일품종으로 남은 ‘캐번디시’가 TR4 곰팡이 변종으로 인한 파나마병의 확산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위기는 처음이 아니고, 60년대에 이미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바나나는 ‘그로미셀’이라는 품종의 바나나가 대표종이었다고 합니다. 당도와 향 그 외에도 품질면에 월등했지만, 50년대 창궐한 파나마병으로 멸종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바나나 품종이 캐번디시인데, 이제 그 캐번디시가 멸종의 위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바나나가 특정 질병에 취약한 가장 큰 이유는 유전적 다양성이 극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씨앗 없이 유성 생식을 하지 않고, 뿌리줄기를 잘라 심는 '영양 번식(클론 번식)' 방식으로 재배되기 때문이지요. 이로 인해 전 세계의 캐번디시 바나나는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복제체'가 되었습니다. 조건과 환경이 좋을 때는 번성할 수 있지만, 조금만 다른 조건이 주어져도 종 자체가 위협받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보도는 다소 과장된 면도 있었습니다. ‘그로미셀’ 품종이 완전히 멸종한 것은 아니었고, 수백 종이 넘는 다양한 바나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됐든 이쯤 되면,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임에 감사해야 할 것 같아집니다. 생명은 언제나 ‘정답’이라는 방향을 향해 나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마다 주어진 길을 택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진리였는지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드러납니다.
우리가 진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이, 자연이 선택했습니다. 열대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는 검은색 피부가 유리했고, 햇볕이 적은 땅에서는 하얀 피부가 살아남았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눈과 코가 작은 이들이 생존했습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우리가 사랑을 하면, 사랑스러운 생명들이 태어납니다. 한 때, 모두가 다 내 마음 같을 줄 알았습니다. 내 마음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힘겨워했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그 시절,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는 저마다의 의지로 살아내는 삶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다름을 그렇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쩌면 좀 더 너그럽게 받아주었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만약 지나치게 고약하다 싶으면 그저 멀리하고 말았을 텐데.
내가 늘 어쩔 수 없이 ‘나’인 것처럼,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저마다인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