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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민 Jan 08. 2024

플롬은 연남동에도 있었다.

230903

 연남동의 구불구불하고 좁은 언덕길은 3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서울의 아스팔트는 여전히 굳건했고, 짐가방을 든 내 무거운 발걸음을 지탱해주었다. 계단을 올라 보이는 고깃집의 바로 옆에 자리한 곳에 플롬이 있었다. 커다란 창문으로 내가 걸어온 길을 둘러볼 수 있었고, 거기에 비친 인수형의 미소도 볼 수 있었다.




베르겐에서 머문 숙소의 주인, 해리 아저씨.

 형이 런던에 올 계획이라고 했다. 숙소비도 아낄 겸 제 방에서 지내시죠, 대신 식사를 책임져주셔요. 준하 씨도 같이 온다고요? 세 명 잘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키보드를 아직 안 사서요. 북유럽 여행도 휴가 좀 써서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좋아요, 와서 뵙죠.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함께하기로 했다. 


 형이 내 방에 짐을 내려놓고, 거기에서 키보드를 꺼내며 내게 선물이라며 건넸다. 나는 우리의 여행이 제법 재밌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그것이 서로를 더욱 유쾌하게 만들었다. 대략 디지털 피아노와 기계식 키보드의 차이만큼.


해리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본 밤하늘.

 여행 도중엔 플롬의 유리창에 비쳤던 그때의 미소를 형에게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도 그때의 표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엔 준하 씨도 있었다. 오슬로에서 맛있는 도넛을 나눠먹고, 베르겐에서 추위에 떨며 함께 별을 보고, 코펜하겐에서 버터를 찾아다니던 시간. 우리는 정말 즐거웠고, 그 시간을 함께 해서 더욱 좋았다. 다음에도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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