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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민 Dec 31. 2023

중년이 되어버린 엄마의 요람, 코란도.

230713

 나는 '우버를 혼자 타는 건 재벌 총수들이나 하는 행위다.'라는 논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복권에 당첨된 것도, 긴급한 일도 아니었다. 집까지는 버스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지만, 나는 우버를 불렀다. 나는 이 친구를 혼자 집까지 데려갈 자신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충격을 최소화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차가 내 앞에서 멈추며, "키유민?"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그의 이름을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의 수염이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짐을 보더니 뒷좌석을 앞으로 눕히고, "안에 뭐가 든 거야?" 흔들리지 않게끔 위치를 조정하고, "디지털 피아노야." 트렁크 문을 닫았다. 조수석에 앉아서,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해?" 벨트를 맸다. "아니, 그냥 좋아해." 차가 출발했고,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부분일 수 있지." 그렇게 금방 집에 도착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하자, 통화가 거절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다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통 전화랑 위치가 반대라서 잘못 눌렀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대화를 적어도 5번 정도는 했었다.


오랜만의 귀국, 엄마 차 안에서 보았던 풍경.

 엄마는 새 차를 사야 할지도 모른다고 운을 떼었다. 케이스에서 받침대를 꺼내고, "10년 동안 탄 차인데 서운해서 어떡해." 높이를 대충 조절해서 침대 다리 맡에 놓았다. "강산이 변해서 디젤차 사기가 쉽지 않아." 침대를 조금 밀어서 공간을 만들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었네, 우리 엄마." 예전 집에서 쓰던 멀티탭을 찾아서 꺼내고, "새 차 사면 적응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헤드폰, 페달, 전원선을 연결했다. "확실히 중년이네." 건반을 누르자 음이 나왔다. 성공적이었다.


 "차가 사망선고받기 직전이라 서운하죠?" 엄마는 그렇다고 말했다. "엄마나 나나 자기 거라고 여기는 거에 주는 정이 많은 편이긴 해." 엄마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폐차를 하고 나면 형이나 아버지 차 좀 뺏어서 타요." 엄마는 새 차에 대해선 별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타던 차를 마음속에서 보내주고 나면 새 차를 사던가 해요. 그 편이 엄마한테나 새 차한테나 코란도한테나 좋을 거야." 엄마는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 둘 다 구닥다리 느낌이라, 정 줘버린 물건이나 사람에 이별을 고하는 게 쉽지가 않아."




 엄마는 예전에 비해 내게서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며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랬으면 전 여자친구랑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크게 소리 내며 웃었고, 전화로는 즐거운 이야기만 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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