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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민 Jan 17. 2024

올해는 어떤 해가 될까요?

240113

 새해의 불꽃놀이는 축제의 시작을 뜻했다. 가지고 있던 담배를 주변인에게 떠넘기며 금연을 다짐하고, 생일쯤이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주변 흡연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축제가 해마다 성황리였다. 단연을 하게 된 것은 몇 년 후. 담뱃값 인상 덕분이었다. 돈은 나의 의지보다는 강하다.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혜누나가 준비해준 케이크. 나는 동물 초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여러 동물이 함께 올라간 케이크는 처음이었다.

 새해가 되었다고 실감하는 때는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꺼트릴 때였다. 나는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케이크로 축하하던 그 시간을 제법 좋아했다. 매해 장식된 동물이 바뀌고,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한다며 저녁을 먹고 나면 반강제적으로 후식 케이크를 먹던 그 시절. 볼살은 빠지고, 수염이 매일 자라는 아저씨가 여전히 생일 때마다 케이크를 찾는 것은 그때의 추억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새해 계획은 '더 뛰기, 더 부지런해지기, 더 집중하기.'였다. 전반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았고, 올해는 '덜 눕기, 덜 게으르기, 덜 산만하기.'로 정했다. 말장난 같다는 느낌이 잔뜩 들지만, 작년의 달성률을 보아하니 확실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 정도였다. 내게 방임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이걸 왜 30대에 깨닫게 된 건지.


 올해는 연하장을 쓰지 않았고, 교회에도 가지 않았다. 연하장은 내년을 기약했고, 교회는 침울한 분위기가 나아지면 가는 것으로 정했다. 새해부터 좋지 않은 소식들에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 줘. 이 정도뿐이라 미안해."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와 그들은 시간선도, 삶의 무게도 달랐다. 이런 사건을 겪을 때면, 내가 외국에 있다는 사실을 종종 실감한다. 서운하게도.




 각자가 살아가는 모습과 마주치는 고난은 전부 다르기에, 타인의 입장에 대한 완전한 이해나 공감이란 건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방관자의 역할에 지나지 않을까. 내 중점의 이야기를 하는 게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각자의 고난은 스스로가 돌파해야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외로움에 사무쳐 그런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고난이 삶을 단단하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혼자 이겨낼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각자 서로를 지탱해 주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이야기. 올해 계획에 ’든든한 사람 되기.‘를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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