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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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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May 16. 2024

저항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시 찾아온 고통에 관하여

명백합니다.


비가 내린 후에

먼지 씻긴 뚜렷한 하늘


고난으로 설명하려 하심이

선명합니다.


경건한 삶

사랑의 실천


올라가길 원하면 당신은

오르게 하려고

부푼 풍선에 구멍을 내어

고통을 선물하십니다.


하나임의 묵상,

행복한 전체를 깨는

황당한 분리.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당신은

'아직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 믿는 나에게

악역을 맡은 그가 나타나

굳이 또 뭔가를 지적합니다.


부족하다는 느낌에 취약한 나는

다시 온 그 느낌이 견디기 힘들어

순식간에 방어의 벽을 쌓고

공격의 날을 세웁니다.


전체를 깨는 황당한 분리


사랑은 그대로를 받아주는 거라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못해주냐며...


그러면서 나도 그를 판단하고 있네요.

그대로의 그를 받아주지 못하네요.


가슴이 좁아진 엄마는

아이가 부르는 '엄마 엄마' 소리마저 버겁습니다.


분리를 조장하는 에고는

미워하는 마음을 얼른 낚아채

더 미워하라고 속삭입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보라며

못된 저 이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더욱더 못 견뎌하라 속삭이는데...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에고에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고 싶어 집니다.


...

아니요!


믿지 못할 생각을

믿지 않으려


가까스로 알아채고

그대로를 봅니다.


그럴듯한 스토리를 풀어내는 과거의 기억에게

지금에 전념하자고 다독입니다.


괴로워하는 순간에도

진실의 존재를,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사랑하기 힘들 때는

사랑하기 힘든 나를 사랑한다고 되뇝니다.


너무 미워

용서할 수도 없을 때는

용서할 수 없는 나도 사랑한다고 받아줍니다.


순식간에 못된 말이 삐죽 나와도,

할 수 있는 한 힘을 내어 사과하고 바로 잡습니다.


자존심은 진실에 헌신되어야 하니까요.



속아 넘어가려는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습니다.


속아 넘어가며 속상한 나를

괜찮다고 다독이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가,

두려움을 느껴보라 합니다.


지켜보는 나는 알고 있습니다.

경험하기 위해 고통이 왔음을.

자라나기 위한 기회가 왔음을.


명백합니다.


스토리에 빠진 작은 나를 위로하며

진실을 알려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회피하고 싶던 진실은 사실 내편입니다.

속이고 있는 것은 '작은 나'입니다.




또 오겠지요.

이제 끝이다 싶었을 때도

끝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릿하게 휭 뚫리는 수치심

목까지 조여 오는 사랑이 막힌 느낌


다음번엔 기꺼이 더 환영하기를


보려고 하지 않았던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안아주는 마스터가 되기를.


저항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고통이 지나가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결국엔 언제나 사랑이 이깁니다.


사랑엔 패자도 승자도 없으니,

패자도 사랑에 안겨 승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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