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죽은 탱스
하늘일까 바다일까, 삶일까 죽음일까
'감사합니다'만 할 줄 아는
덩치만 큰 기계라서,
사람들은 탱스를 바보취급했어.
사실 그는
'억울합니다' '괴롭습니다'도
할 줄 알고,
덩치보다 큰 숨겨진 힘과 가능성
치유의 능력까지 있었지만
자신에게 벌어지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이라 배워서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 찾고
주눅 들고 주눅 들고 또 주눅 들어
속으로만 숨듯이 지냈지.
위축된 탱스가 어쩌다 실수를 저지르면
사장은 원망을 담은 말투와 경멸의 눈빛으로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했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은 멍청한 기계란듯
탱스를 한심하게 쳐다봤고,
아무렇지 않게 물을 뿌려댔어.
탱스는 갈수록 고장이 났어.
'제발 그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상처 주지 말아 줘.'
탱스는 둔하고 순진했지만
물에 대해서는 아주 아주 예민하고
생각이 많았지.
그러면서 탱스는
작정하고 일부러 뿌린 물뿐 아니라
지나가는 차가 튀긴 흙탕물에도
어린아이가 장난치는 물줄기에도
별 뜻 없이 툭 떨어진 빗방울만 맞아도
아픔을 느꼈어.
그런 자신이 이상하기도 하고
잘못된 것 같기도 해서
더욱 괴로웠지.
탱스는 누구도 미워하기 싫었어.
가끔씩 미움이 가득 차면
세상은 컴컴한 어둠이 되니까.
하지만 상처가 깊어
용서도 힘들었지.
쉽게 용서할 수 없다면,
차라리 거리낌 없이
맘껏 대들고 욕하면 나을 텐데,
바보 같은 탱스는
미워하기 싫은데 미우니까,
영과 혼이 따로 따로라
고통이 깊어져...
그런데도 자꾸 미워서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꿨어.
어떤 날은 모든 역할을 뿌리치고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
생각이 깊어지고 깊어지면
아주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하니까.
꿈에서 탱스는 가까스로
닫힌 입을 열었어.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만큼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사람들은
할 일이 남았다며 서운하다 자기 말만 하고,
고집세서 자기 말을 안 듣는다 분노하고
바보 같고 멍청하다 화를 내고...
탱스가 하는 말은
각자가 맘대로 해석할 뿐
그 누구도 그대로를 들으려 하지 않았어.
슬픔이 밀려와
물 뿌리듯 가슴에 부딪혀
탱스는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어.
'하... 아, 전 너무 힘들어요.
누가 내 마음을 알까요?'
그때.
탱스의 귓가로
작은 속삭임 하나가 내려앉았어.
자신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잘 들어보라고.
속삭임이 말하길,
고난이 사실은 포장지래.
은총이란 선물은 늘
고난이란 포장지에 싸여 오는데,
포장지를 벗기는 비결은
바로 '감사'라고.
촌스러운 속삭임이
희망처럼 달콤해서
탱스에게 자연스레 녹아 믿어졌어.
그때부터 탱스는
속이 상할 때면 주문처럼
'감사합니다'를 외쳤던 거야.
'억울합니다' '괴롭습니다'도
할 수 있었지만
'무조건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향하는지 몰라도
자신 안에 느껴지는 다른 존재에게.
느끼지 못해도
이해할 수 없어도
'무조건 감사합니다.'
대책 없이 어두운 생각이 들어오기 전에
틈을 주지 않고 그냥 감사만 했어.
사람들은 계속해서 탱스에게 물을 뿜어댔어.
물을 맞고, 물을 맞고, 상할 대로 상한 탱스는
지지직, 지지직... 고장이 났지.
어느 날 탱스는 바다에 버려졌어.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기능도 못하는 바보 기계를
지지직 거리는 채로 번쩍 들어 바다로 던졌지.
깊은 물속에 들어가니
탱스의 몸속 지지직이 들리지 않았어.
신음소리만 멈춘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런 아픔도 없이
고요만 흘렀지.
그래 죽었나 봐.
그래서 편안한가 봐.
편 안 해.
탱스는 본래 자유로운 기계
물이 탱스를 공격하는 줄 알았지만
물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가라앉지 않고
그렇다고 위로 뜨지도 않고
물속에서 자유로운 영혼
행복하고 싶었어.
고통받기 싫었어.
사실은 모두가 그랬지.
알았든 몰랐든
나를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도
행복하고 싶어 했고
고통받기를 원치 않았어.
모두에게 삶은 중요했거든.
놀리는 듯 보였던 세상이
모든 것을 안다는 애정 어린 눈으로
탱크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 눈길 속에 탱스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대로 온전한 존재였어.
그때 탱스는 알았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바라던 느낌이란 걸.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해줘요.'
'내 모습 그대로가
당신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탱스가 바란 진짜 사랑은
세상 밖에 있지 않아_
깊은 안쪽에 있었지.
충분한 사랑
가장 바라던 느낌이 여기 있어.
감 사 해.
기계인 탱크에게 미소를 번졌어.
살아있음의 기쁨이 솟아났어.
죽고서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걸까?
아니, 이제야 진정으로 산 걸까?
하늘일까
바다일까
가장 편안한 이곳은.
죽음일까?
생명일까?
죽고 나서
다시 산 걸까?
"멀쩡해 보이는 게 왜 저기에 있지?"
미끄러지듯 바닷가에 닿은 탱스를
다른 사장이 발견하여 닦아 쓰기 시작했어.
'감사합니다'만 할 줄 아는
덩치만 큰 기계라서,
사람들은 탱스를 바보취급했어.
하지만 탱스는 본래 자유로운 기계
물이 탱스를 공격하는 줄 알았지만
물속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
물을 뿌려도
미운 사람이 없으니
용서할 사람도 없었대.
이제 탱스의 세상은
밝은 은총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이 바보 같은 기계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따뜻한 사랑을 느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