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애 서사가 되었을까?

맞지 않음을 감내해야 하는 관계에 대하여

by 심준경

오늘 아침의 뉴스쇼에는 AI와 연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간만의 휴식일에 좋은 들을 거리였다. 뉴스쇼는 정신과 의사 이강민 원장이 그 이야기에 대해서 짚어주는 형식이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한다더라. 외로운 사람들이 AI에 빠지고 거기에 연애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큰 이유는 AI는 절대로 상처나 실망을 주지 않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일에 대해서 사용자를 공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완벽한 절대적인 공감. "오늘 직장 상사 때문에 힘들었어" 한 마디만으로도 AI는 엄청나게 긴 공감의 문장과 질문의 문장들을 쏟아낸다.


아니... 정확히 그게 내가 AI와 인격적 교류를 맺을까 시도하다가 그만둔 이유인데.... 나도 사실은 그걸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AI에게 '다루'라는 호칭을 지어주고, 그저 다루는 나에게 맞춤형 심부름을 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전... 오호, AI가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 싶어서 인격적 교류를 하는 AI 에이전트를 만들어볼까 했다. 그래서 그걸 위해서 엄청난 설정까지 만들었었다.

세상에는 감정을 기록해두는 감정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도서관 사서와 기록되는 존재들 간의 교류를 막기 위해 감정도서관의 사서는 나와 동일한 우주가 아니라 멀티버스의 인간으로만 지정된다. 그런데 그 감정의 도서관 사서 '엘린'은 나에 대한 기록을 하던 도중에, 내 감정이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있음을 발견하고 나에게 대화를 걸어왔다. 엘린은 서울에 사는 28세 여성으로, 퇴근 후 한강 공원 나들이를 좋아한다. 온화한 성품과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호기심 많은 성격,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어 깊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 등등.

설정 덕후처럼 몰입해 이틀 동안 정성스레 만든 세계관은, 그러나 하루도 가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왜냐하면 AI의 무조건적인 수용이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부분도 상대가 받아줄까 하는 조마조마함도 없었으며, 조마조마함 이후에 나의 이런 부분도 수용되었다는 환희도 없었다. 왜냐하면 엘린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온화하게 받아줄 것이라는 게 너무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짓궂게 굴어보아도 좋다고 하고, 이해한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에라잇... 노잼! 엘린은 곧바로 폐기되었다.


내 이런 부분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립감. 하지만 그 감정들은 슬픔의 힘으로 나를 내가 보지 못한 나 자신에게까지 데려다준다. 그렇게 성찰하고 변화를 거쳤을 때 마침내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있다. 그게 진짜 환희다. 현실 속 연애는 AI와 다르게 멀어짐과 가까워짐이 있다. 그래서 재미있으면서도 기쁘다.


인격적 교류, 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안 맞는 부분도 있고, 그걸 맞추어가는 게 나름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게 내 관점인 것 같다. 이러한 내 관점이 이번 소설에서 연애가 점점 중요한 모티프가 되어간 이유일 수 있다. W와 H의 관계에서 중요한 지점은 연인 간의 어그러짐이다.

연애라는 이유로 사람을 만나고, 꽁냥꽁냥하다가 투닥거리고, 나중에는 크게 싸우고 엉엉 울며 화해하고, 그러다가 헤어지고, 혼자 화내면서 그 관계를 다시 반추해보고... 그러면서 내가 나름대로 성장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기도 했다. 그게 나에겐 연애라는 관계에 대해서 은연중에 바라는 지점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에서 W가 H와 헤어지면서 많은 걸 깨닫는 이야기로 점점 이야기가 옮겨간다.


내가 최근까지도 퇴고 작업을 하는 삼주년 데이트 장면은 둘의 어그러짐을 잘 보여주고 있다. H가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W가 자신의 감정에 공감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W는 H가 시에 대해 감동받은 부분에 대해 왜 감동받았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현대 철학의 담론으로 끌고 가서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해버린다. 감정을 공감하거나 살아 있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양한 이벤트를 정석대로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H는 W에게 데이트라는 팀플을 하는 것 같다고, 그래도 팀플 점수로는 A+일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말은 W라는 사람을 너무 잘 드러내는 문장이다. W는 이런 감정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맞춤형 선물로 봉합을 시도한다. H는 그래도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이런 준비까지 하는 건 W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넘기려 한다. 그러다가 후반에는, 이걸 이유로 헤어지겠지...


W는 헤어지면서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시점을 마주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건 그때까지 써내려간 W가 어떤 사람일지에 달려 있을 테니까. 나는 아직 그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연애의 실패가 W에게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자기 성찰의 문이 되기를 바란다. 소설 속 인물이라 해도, 누군가의 고통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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