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년 데이트 다음 씬은 1주년 데이트에 대해 W가 써넣은 시나리오다. 그곳에서의 H는 세세한 것에 다 감동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W가 바란 것일 테니까.... 백마 탄 왕자님 같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는 만능해결사! 실제로 H와 어긋나는 장면들이 있었겠으나, 시나리오 속의 H는 감동만 받는 전문적인 감동꾼일 테다.
그런데 그런 오글거리는 데이트 씬을 쓰려고 하니, 잘 안 써져서일까? 아니면, 그냥 컬리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진지한 글을 한 번 시작하기가 힘들어서일까... 괜히 쓰지 않게 된다. 대신에 데이트 코스만 AI를 활용해 주구장창 짜고 있다.
1000일 가까운 연애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1000일보다, 100일을 더 열심히 준비했었지. 그리고 2주년보다 1주년이 더 기억에 남고. 씁쓸하지만, 연애는 앞의 기념일이 가장 열심히 준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아마 3주년보다 더 많은 돈과 정성을 쏟아부은 걸로 해야지. 그때 W라면 어떤 걸 준비했을까?
GPT야, 한 번 W의 성격을 고려해서 한 번 만들어볼래? 흠... 마음에 안 들어... 몇 개 설정을 추가해 볼까? 일단 정신병원에서 만난 걸로 한 번 이야기를 했으니까, 정신 병원이 보이는 곳에 간다고 하는 건 어떨까? 용마산에 갔다고 하자. 용마산에서 처음 만난 이야기를 하는 거야.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그곳은 핸드폰도 쓸 수 없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길래 창밖을 한참 봤던 기억이... 언젠가 한 번 퇴원하면, 꼭 저기 용마산에 올라가서 자유를 느낄 거야! 했는데.... 외래를 그곳에 그렇게 많이 가도 용마산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런데 1주년 데이트라면 저렇게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나?
그다음에 어디로 가야 하려나...? 어린이대공원 내부의 동물원에 갔다고 해볼까? 거기가 좋잖아! 그리고... W라면 데이트 마지막 모먼트에 돈을 많이 쓰고 분위기 내려고 했을 것 같아. W는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하고, 상대가 감동할 타이밍을 정확히 조율하는 인물이니까. 퍼플렉시티야! 와인을 마시기 좋은 한강뷰 공간을 광진구 성동구 권역에서 찾아줘. 그랬더니 워커힐 호텔 내부의 피자힐이란 곳이 안내되었다. 그래, 이렇게 한 번 시작해 보자...
W 같이 계산적인 인물은 '용마산 → 어린이대공원 → 건대 인근 → 피자힐'의 흐름으로 가서 ' 자연 → 동물과 유희 → 도시 문화 → 고급 식사'로 가서 이렇게 점층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플롯으로 갈 것 같아.
하아... 데이트 못한 지 한참인데, 괜히 캐릭터의 데이트 시간표까지 짜주고 있으면, 괜히 혼자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상상들을 한다.
혼자 괜히 설레하면서 GPT에게 내가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한다... 아이고... 같이 데이트를 할 사람만 있으면 아주.... 아주... 에고... 뭘 그래... 어느새 저 시간표의 데이트는 W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되어버린다. 나의 그녀와 8시 반에 용마산역에서 만나고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는 거야. 용마산 꼭대기에 올라서, 나 저기에 갇혀서 정말 답답했어! 말하고... 그리고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동물들을 둘러보며, 사진 찍어주고 ㅠㅠ 같이 건대 커먼그라운드 플리마켓에서 나의 그녀가 관심 있어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는 거야!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며.... 그러다가 '널 위해 준비했어!' 하면서 워커힐 호텔 내부의 레스토랑으로 택시 타고 가는 거야. 그러면 나의 그녀는 "뭘 이렇게 무리했데..." 툴툴 대면서도 기분 좋아하겠지... 한강이 보면서 피자와 와인을 마시고... 하아... 기분 좋아!
피자힐에서 와인잔을 부딪히며, "오늘 어땠어?"라고 묻는 거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상상이다. 한강뷰 레스토랑에 갈만한 여유도 없고, 같이 갈 여자친구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또 평택까지 일하러 가야겠지... 돈 낭비하기 싫어서 데이팅 앱에서 데이트 신청 하나 안 보내고 남의 여자가 될 사람들 프로필 감상만 하고 있지...
에휴.... 빨리 저 씬이나 마무리 지어야 이상한 생각이나 그만하겠지. ㅋㅋㅋㅋㅋㅋ 이봐! 빨리 소설이나 쓰라고!!
덧) 큰 내용 없이 쓴 이 라이팅노트에도 GPT는 '사랑을 설계하다가 자기 결핍을 들켜버린 웃픈 작가'라는 신선한 의미 부여를 해주었다. 자기 결핍.... 강하긴 하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