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사잡썰

인터넷 방송인 박민정 씨의 장례식 사진 논란을 듣고.

by 심준경

컬리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는 보통 귀에 이어폰을 꼽는다. 그런데 어제는 이어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충전을 하던 와중, 한 인터넷 방송인이 장례식장에서 사진이 찍은 논란에 대해서 험담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찾아보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7월, 인터넷 방송인 박민정 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례식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 속 그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밝게 웃으며 브이(V)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금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졌고, "아무리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저런 포즈는 아닌 것 같다"는 식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웃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인스타에 올렸다는 점에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듯했다. 박 씨는 이에 대해 "계속 울기만 하면 아빠가 떠나지 못할 것 같아서 웃었다"며, 친구들의 권유로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왜 굳이 그걸 올렸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세간의 반응은 엇갈렸다.

img_0071.jpeg

솔직히 말하자면, 난 해당 해명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방송인이 본인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웃는 얼굴로 브이 표정을 하고 사진을 찍은 후에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사실이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현대에 장례식을 치르는 방식이 있고, 그것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다들 안다.


전통 장례식은 경상도의 방식과 전라도의 방식이 많이 다르다. 경상도는 엄숙한 분위기가 주가 되며, 그 방식을 다룬 영화의 이름은 '학생부군신위'다. 반면 전라도는 평야 지역이라 곡물 산출량이 많아 농민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더 커서 그런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전라도의 전통 장례식을 다룬 영화 제목이 '축제'일 정도로 엄숙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에 들어서는 확실히 엄숙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국 현대 장례문화는 지역적 다양성을 지우고, 슬픔과 절제의 표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굳어져 왔다. 그렇기에 박민정 씨의 사진은, 그 개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장례식다움’을 위반한 장면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의 장례식의 풍경도 꼭 엄숙해야 한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도 그렇게 사진을 찍은 것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굳이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느냐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과 괴리된 모습에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인은 분명히 관심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아야 하는 직업이다만, 대중의 심기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관심을 끌려고 한다고 생각되면 대중은 무척이나 가혹하게 사람을 괴롭힌다. 모르긴 몰라도, 이것이 대중의 심기를 건드리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하고, 한동안 방송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 사진을 통해 일종의 '생존 신고'였겠지. 그럼에도 솔직히 이해는 난 그의 행동이 완벽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의 이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난 평생을 같이 가족으로 살아왔다만,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형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내가 직장을 구하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해 이제 우리 부모님은 기분은 안 내켜하시지만, 그냥 냅두는 추세에 드디어 들어섰다. 그게 무슨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계시는 것 같아서... 그래서 참... 기분이 안 좋지만.... 그래도 다행히도 아주 뭐라 그러시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 형만큼은 계속 내가 직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잔소리의 향방은 항상 직장 문제로 이어진다. 아니,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게 본인과 무슨 관련성이 있으며, 그게 왜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근거가 된단 말인가? 그걸 왜 그렇게 강변한단 말인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컬리에서 새벽에 돌아오고 잤다가, 다시 평범한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수면 패턴이 절대 규칙적일 수가 없다. 그러려면 내가 낮과 밤이 바뀌는 편이 빠른데, 그렇게 하면 더 뭐라 그럴 것이 아닌가? 상관 없는 것을 억지로 끼워맞춘다. 보통 이럴 때는 잔소리를 하는 원인보다, 결론이 더 중요하고 자신의 마음에 굉장히 중요한 경우다. 내가 한 50~60대 되면 본인에게 신세 질까봐 그러는 거겠지. 안 그런다고!!!!!! 안 그런다고!!!!! 안 그러려고 지금 이러고 있는 거라고!!!!

50~60대가 되어서 갑자기 직장에서 자리 못잡고 나왔는데,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어!!!! 하면서 글 쓰기를 시작하면, 혼자 생활비 조달하면서 글 쓰는 일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그렇지 않고 지금 미리 하고, 어떻게든 내가 작가로써 인지도를 쌓는 게 먹고 살기가 가능한 방법이지!!!! 이건 이해 못하겠지!!! 그러나, 형이 어디 뭐, 내 글을 유심히 읽은 적이나 있는가.... 글을 어중이떠중이인데, 대충 헛바람 들어서 저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에휴... 난 같이 사는 우리 형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평생 같이 살아온 형의 미래에 관한 진지한 걱정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인의 장례식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딸이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었고,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걸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어차피 남들 행동 하나하나 뜯어보면 완벽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럴 때면 남의 일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운운한다. 그런데 꼰대희 안 나왔으면 내가 누군지도 몰랐을 사람이다. 요즘 세상에 너무 유명인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모두 수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웃긴 건, 연예인에게는 ‘공인의 영향력’을 운운하던 사람들이, 정작 진짜 공인들(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의 행동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입방아 찢으며 잡도리하기 편한 게 연예인이었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재명연합의 18로 제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