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서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은

by 심준경

서울이 동경의 도시였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이다. 나는 진주에서 태어났고, 3살 때부턴 대전에서 자라났다. 그 시절, 지방에 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의례히 그러듯 서울이 꿈의 도시였다.


한국의 TV 프로그램은 서울에 맞추어져 있다. 거의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예능 출연자들끼리 게임을 해도 배경은 서울이다. 덕분에 나는 실제로 몇 번 가보지도 않은 도시의 세부적인 지명까지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애틋한 장소 중 하나인 흑석동의 이름을 듣게 된 것도 다름이 아닌 시트콤에서였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은 실제로는 고양시 일대에서 찍었으나, 설정 상으로 주인공이 사는 곳은 흑석동이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단순히 개그 요소만 넣은 것은 아니었고 다양한 장르들의 모티프를 끌어들였는데, 그중 일부는 추리극의 요소였다.


약간은 나사 빠진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 형사 한 명은 유미의 집에서 시신을 발견한 후, 진범을 잡아내고도 유미의 아버지를 끝없이 의심하다가 비밀에 결국 다가선다. 형사의 입에서는 자신이 집착하던 그 장소의 이름이 여러 번 나온다.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OO-O번지.


그 형사 캐릭터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쩌면 내 인생에 대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흑석동, 그리고 집착. 서울에서 내가 대학 생활을 했던 장소는 흑석동이었고, 흑석동에서 나는 집착 대마왕이었다. 끝없이 누군가의 관심을 갈구했다.


누군가가 나를 끼워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안심이 되는 시절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했는데, 내 방식은 하루 종일 과방이나 동아리방을 떠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 시절 나를 찾으려면 아마 그 두 곳 중 한 곳에서 세 시간 정도 앉아 있기만 했어도 됐을 것이다.


그러한 방식이 아주 잘 먹혀들어가는 방식만은 아니었다. 집에도 안 들어가고, 도서관도 안 가고, 그러니 성적은 나아질리가 없었다. 시간관리라곤 전혀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강박적으로 '그들'에 속하고 싶어 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누군가에게 끝없는 호의를 받고 싶었다. 어릴 적에,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나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서열 놀이에서 구성원조차 될 수 없었던 나는, 사회에 '나', 그리고 서로 상호 존중하도록 합의된 관계인 '그들'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 내부에는 다양한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흑석동에서 나는 어떻게든 '그들' 안에 속하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법 괜찮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어주었다. 서투르기도 하고, 조금은 바보 같기도 했던 나의 사회생활에 호의를 다해 응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내 마음이 현실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나에게 진주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진주에서는 아무런 추억이 없다. 대전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또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대전은 나에게 불친절했고, 내 마음이 공상 속을 떠돌게만 했다. 사실은 내가 엄청나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 모두를 놀래키는 것에 대한 공상. 천재를 다루는 B급 영화의 시시한 스토리처럼 말이다.


9년 간의 서울 생활 끝에 내 마음은 로또라는 또다른 공상의 세계로 빠지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서울에서 왔다고 하고 싶다. 서울 사람이라는 호칭이 제법 마음에 든다. 나에게 호의를 주었던 대부분의 사람은 서울에 살고 있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고 싶진 않다. 처음부터 서울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