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름도 생소한 순화동에 가본 이유는 오로지 그곳이 기형도가 다니던 직장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기형도는 84년 10월에 중앙일보에 취직했었고, 중앙일보는 85년에 순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하니, 아마 그가 직장 생활을 한 곳은 순화동 사옥이었을 것이다.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이 들어선 덕수궁 근방을 지나서 시청역 9번 출구 방향을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건물의 기골은 장대하지만 창문이 작은 80년 대풍의 건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그곳까지 오는 동안, 그는 자신이 쓴 시구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눈길을 지나다가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곳에서 혼자 울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는 곳, 그러니까 자신의 직장에서 혼자 펑펑 울고 있던 사내를 보고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던 곳. 혹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봉투를 떨어뜨렸다던 그곳, 그러니까, 진눈깨비를 맞으며 자신의 과거 이력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던 곳. 그곳은 순화동이었을까?
그 사건들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던 것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시구는 그 사건이 정말 있었던 것으로 믿게 한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왠지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는 타고난 시인이다.
나는 그의 시를 완성본 형태로만 읽었을 뿐, 그가 언제, 어떤 시를 어디에서 생각했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 거리를 지나치며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건물들은 투박했고, 뒷골목은 좁았으며, 밤은 깊었고, 인적이 드물었다. 기억나는 그의 시 하나하나를 되짚어보았다.
20대 시절 내내 그가 쓴 한 구절에 끝없이 공감하곤 했었다. 그는 자신을 곰팡이 핀 오래된 책으로 비유한 시에서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라는 말을 남겼다. 왠지 그것이 나의 일생을 전부 대변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또한 나처럼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 '대학 시절'에서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고독이라 함은 무엇인가. 그는 은백양의 숲이 펼쳐진 대학 캠퍼스에서 청년들이 각오한 듯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플라톤을 읽었다고, 그러다가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져버렸다고 했다. 존경하는 교수가 세태에 원체 말이 없었다고 원망하는 기색조차 없이 말한다.
나는 열렬한 시위가 벌어지던 80년대 대학가를 경험하지 않았고, 플라톤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대학시절을 회상할 때에 그 고독감에 왠지 모를 공명을 느끼곤 했다. 아마 시 전반을 꿰뚫는 아웃사이더 기질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면서도 완전한 반항을 이루지도 못한 느낌이 시를 뒤덮는다.
그러한 그가 '질투는 나의 힘'에서 청춘을 되돌아보며 말을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자기 희망의 내용은 결국 질투뿐이었다고. 그 무엇도 되지 못했던 어중간한 존재, 그러면서 누군가를 끝없이 부러워만 했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기형도는 천재 시인이 되었기에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지만…
그다음 구절들은 평생 내 마음을 파고들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하는 그의 말. 어쩌면 그가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한 저 소회를 표현하기 위해, 서울과 젊은 시절의 추억에 대한 글을 시리즈로까지 만들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리즈로 만들어도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사 차원의 벽이 있는 것 같다.
그의 행적을 쫓기 위해 할 수 있는는 것은 그저 순화동 거리를 걷는 것뿐이었다. 기형도가 살아있을 때 한 번쯤 가보지 않았을까 싶은 50년 전통의 콩국수집이 있었으나, 콩국수를 팔지 않았다. 지금 팔고 있는 섞어 찌개를 1인분으로 팔지도 않았다. 그저 거리를 계속 걷다가 종각 인근을 지나치며 그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파고다 극장 건물도 볼 수 있었으나 큰 감흥은 없었다. 그의 시처럼 눈발이 쓸쓸히 날렸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