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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준경 Sep 04. 2024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무대,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감상들에서 모두가 빠뜨리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의 의미이다.


무엇이 되었건, 영화의 제목에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이 영화에 중요한 열쇳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LALA Land'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영화에서 'LA'라는 공간적 배경을 어떻게 의미화하고자 하는지를 중심에 두고 그 영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영화에서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어떻게 의미화시키고자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는 너무나 친절히도 주인공 개츠비의 입을 통하여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 한 번 빠지면 다른 곳은 성에 차지 않게 된다. 이 정도의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멋진가?


이 대사가 나온 후, 개츠비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개츠비는 그 동창을 이렇게 소개한다. "고등학교 동창 가장 기분 나쁘고 역겨운 캐릭터(One of the most obnoxious and revolting characters from my highschool, 이 대목에 대하여 더 나은 번역이 있으신 분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개츠비가 설명한 것과 똑같이 그는 정말 기분이 나쁘게 모든 세상만사를 논평한다. 만나자마자 묻지도 않은 남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을 말한다. 그리고 남의 외모나 남의 성격에 대하여 쉽게쉽게 평가절하하며 말한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근황에 대해 물어봐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리고서는 재수없게 "나 겨우 세인트조지에서 의예과나 다니고 있어"라며 으스대고 사라진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항상 불안감과 적대감, 불신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떠한 의미도 추구하지 않고 살아가며 사람이 속물적이 된다. 불안감, 적대감, 그리고 불신이 모여있는 곳에서 어떠한 의미도 추구하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나를 지킬 수 있는 지위나 재력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얻고 나면 속물들은 남들을 쉽게쉽게 평가 내린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묘사하고 싶은 뉴욕은 과연 속물들의 도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 영화 제목에서는 뉴욕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비 오는 뉴욕은 특수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의미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불안감, 적대감, 그리고 불신을 최대한도로 잘 활용해야 되는 직업은 많다. 대표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아주 많이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비오는 뉴욕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에서 비는 언제 내리기 시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키스씬! 개츠비는 우연히 들르게 된 고교 동창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맡게 된 엑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은 무려 키스씬! 그것도 키스를 하는 상대 배우는 옛연인의 여동생인 '첸'이다. 개츠비는 키스를 하려고 하자, 여자친구인 애슐리가 생각이 나서 키스에 집착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첸과 개츠비는 뜨겁게 키스를 나눈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주인공인 첸은 갑자기 적극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비오는 뉴욕은 낭만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친구를 냅두고서는 딴 여자와 키스를 하는데, 무슨 낭만이냐고?!?!?! 약간의 바람기는 낭만으로 허용된다, 뭐 이런거냐고?!?!?!?! 미안하지만, 이 영화에서 개츠비의 운명적 상대는 여자친구로 나오는 애슐리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둘의 관계는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관계다.


사랑이 아닌데 왜 둘이 데이트를 하고 연애를 하는 관계로 나오는가?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이다. 우리는 사실 진정한 의미의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애슐리와 개츠비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둘이 함께 대화하는 장면은 정말 기괴하다. 애슐리는 개츠비에게 가서 자랑한다. 대학교 신문사에서 '롤런드 폴러드' 감독의 인터뷰를 자신에게 맡겼다고. 그러자 개츠비는 그것을 듣고 진심으로 즐거워 하며 어떻게 그 인터뷰를 맡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언제 하는지, 어디에서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뉴욕 맨해튼에서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하자 즐거워 한다. 드디어 우리가 맨해튼으로 가는 주말 데이트를 해볼 수 있겠다고.


개츠비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데이트 코스를 짠다. 자신이 옛날에 말했던 추억의 장소들에 대하여 말하며 그곳으로 가자고. "칼라일 호텔 예약해야겠다. 거기 바 얘기했었지. 피아노 연주에 뮤지컬 곡들을 불러주는 점심이랑 저녁은 호텔 밖 시내에서 같이 먹는 거야!", "근데 칼라일 호텔에서 묵으면 안 되겠다. 집이랑 너무 가까워. 난 그래도 네가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곳에서 같이 하룻밤을 보냈으면 해. 그러면... 피에르에 묵으면 되겠다! 그러면 공원도 보이고 부모님 집과도 거리가 있고. 칼라일 호텔 바는 저녁 먹고 가서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아! 피에르는 진짜 옛날의 뉴욕이라서 내가 정말 좋아해! 베멀먼즈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그러자 애슐리는 즐거워하며 말한다. "나 네가 맨해튼 구경시켜주기를 언제나 원해 왔었어!"


그러나 애슐리가 관심 있는 맨해튼은 자신의 연인 개츠비의 고향인 맨해튼이 아니다. 애슐리가 관심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의 중심, 뉴욕 맨해튼이다. 애슐리는 개츠비가 언급하는 장소들에 대하여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곳이 개츠비에게는 어떤 의미의 공간인지, 왜 그곳을 좋아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애매한 감탄사만 연발하며 넘긴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미국의 중심지인 맨해튼을 관광해본 아주 단편적인 경험만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종류의 연애가 아니다. 언제나 개츠비가 애슐리에 대하여 일방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종류의 연애이다.


그렇다면 애슐리는 개츠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애슐리가 개츠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애슐리의 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온다. 영화 각본가 '테드 다비도프'와 이야기를 할 때이다. "그 애는 전문적인 직업 쪽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그애의 세계에서는 자기가 스카이 마스터슨(뮤지컬 속 도박꾼)과 같이 되는 것을 꿈꾸는 것 같아요. 약간 괴짜인 친구에요.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많은 걸 읽게 하고 피아노를 배우게 했거든요. 정말 똑똑하긴 해요. 공부를 안 하는데 시험을 잘 보는 타입의 아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비밀인데.... 그애가 아스퍼거 증후군 끼가 살짝 있는 것 같아요."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스펙트럼 장애 중 하나로 지적 능력이 양호하지만,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의미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으로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지며, 특정한 주제에 대해 듣는 이의 느낌이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둘의 관계에서 듣는 이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만 계속 말하는 쪽은 애슐리이다. 그리고 연애라는 관계의 특성 상, 이건 애슐리가 특정한 종류의 병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개츠비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연애라는 관계성이 그럴 때도 많다. 사람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데, 그냥 외롭다거나,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풍기는 느낌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거나, 그 사람의 조건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거나....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만나는 경우가 아닌 때도 많다. 참 애석하게도 말이다.


그렇다면 애슐리는 왜 개츠비와 연애를 하는 것일까? 애슐리의 행동 패턴을 보면 알 수 있다. 애슐리는 예술가에게서 풍겨지는 느낌들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영화 감독 롤런 폴러드에게 급격하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고, 테드 다비도프와 대화를 하면서 성적 흥분을 느낄 때한다고 밝힌 딸국질을 한다. 그리고 프란시스코 베가와는 하룻밤 잠자리 상대로 만나보고자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슐리가 예술에 진정으로 조예가 깊다거나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서, 예술의 의미를 찾고 즐기고자 하는 타입도 아니다.


애슐리는 극작가 데니와의 대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폴러드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질물을 받자 '윈터 메모리즈'라고 답한다. '윈터 메모리즈'를 처음 본 경험에 대하여 말하면서, 개츠비와의 첫 데이트를 말한다. "대사 때문에 키스하고 싶어졌어요. 사랑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대사요." 그러나 그 대사를 이해했냐는 질문을 받자,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냥 혼란스럽고 불안해져서 날 안고 키스해줬으면 했어요." 이처럼 애슐리는 예술에 정말로 조예가 깊다거나, 아니면 자신이 본 예술 작품의 의미를 탐구하고 싶다거나 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그저 예술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며, 예술가 느낌을 주는 남자들에게 끌릴 뿐이다. 일종의 동경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그런 느낌을 풍기는 개츠비를 만나 연애를 하지만, 사실 그가 끌리는 것은 그 느낌이지, 개츠비라는 사람이 아니다. 개츠비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으며, 개츠비의 말에도 관심이 없다. 그저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개츠비가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말하면 "쟤는 왜 저런 말을 하지..."하며 다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렇다면 개츠비는 애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도 대사로 직접 들을 수 있다. 챈이 애슐리에 대해서 묻자 개츠비는 이렇게 말한다. "상큼 그 자체라고, 매력 있지, 사랑스럽지, 예쁘지, 가끔씩은 섹시하기도 하고, 또 걔는 재치도 있어! 노래도 잘 하고, 플루트도 연주 잘해!" 이런 것을 표현하는 한 마디가 있다. "이상화." 왜 "콩깍지"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았냐고? 나는 "콩깍지"와 "이상화"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콩깍지"는 그 사람의 결점이 인지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결점까지도 사랑스러워보이는 것이다. 반면에 "이상화"는 그 사람이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며, 결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인 대상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휴, 너는 그런 부분이 어떻게 사랑스럽게 보이냐?" 반면에 연애 상대를 이상화하는 대상에게는.... 개츠비의 말을 들은 챈의 대사를 그대로 말해줄 수 있다.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더 이상은 못들어주겠다!"


그렇다면 개츠비는 왜 이렇게 애슐리를 이상화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런지 앐기 위해서는 둘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너무 비슷한 사람인가? 아니면 너무 다른 사람인가? 너무 비슷하다면 애슐리가 개츠비를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개츠비와 애슐리는 지나치게 다른 종류의 사람이 아닐까? 왜 개츠비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두고 이상화하고 있는가? 영화의 전개를 보면 알 수 있다.


개츠비는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맡은 애슐리와 데이트를 할 생각으로 뉴욕 맨해튼에 함께 온다. 그러나 애슐리는 인터뷰하다가 인터뷰 대상들이 하는 이런저런 제안들에 이끌리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감독이 신작 영화를 한 번 보고 확인하는 자리에 함께 가려고 하냐는 제안, 극작가가 감독에게 영화를 칭찬하려고 하는데 같이 가려냐는 제안, 아니면 우연히 마주한 영화 배우에게 저녁을 같이 먹으려는 제안 등등에 그저 이끌린다. 이러한 이끌림은 앞서 말했듯이 애슐리가 예술가를 동경하고 예술가에게 끌리는 사람이여서지만, 동시에 애슐리가 뉴욕 사람들의 높은 수준의 욕망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애슐리는 남자들의 관심을 살 만큼 예뻤고, 그렇기에 애슐리가 남성이라면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일들에 애슐리는 휘말린다. 그리고 그것은 예쁜 애슐리를 옆에 두고 싶은 남자들의 욕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애슐리는 뉴욕 사람들과 같이 욕망을 다루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인 중서부 사막 도시, 애리조나 투손 출신이기에 사람들의 욕망 섞인 제안에 대하여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가지고 상대하는 법을 모른다.


개츠비의 여자친구가 처음 만나는 이들의 욕망에 의해 이리저리 이끌리는 동안 개츠비는 절망스러워하다가, 옛 여자친구의 동생인 첸을 만난다. 첸과 개츠비는 “불안감, 적대감, 불신”에 가득한 듯이 서로의 행동을 비꼬아 말하면서도 서로에게 친근감과 호감을 표시한다. 그렇게 첸과의 나들이를 마치고도 개츠비는 여자친구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틀게 된 TV에서 보게 된 애슐리와 영화배우의 저녁 데이트에 관한 보도!


그래서 개츠비는 우연히 만난 창녀를 여자친구라고 속이고 집에 방문한다. 하지만 개츠비의 어머니는 알아차리고 창녀를 집에서 내보낸 후에 개츠비와 대화를 한다. 왜 이렇게 속을 썩이냐고 묻자, 개츠비는 온갖 고급적인 문화적 취향을 가진 가족인 척하려고 사람을 옥죄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그러자 개츠비의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했어. 자신은 중서부에서 와서 생계가 어려운 때에 창녀일을 했었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그런 과거와 멀어지기 위해서 고급문화 취향을 가진 가족이 되려고 했는데, 그런 이유로 너를 힘들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개츠비의 내면에 심대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어머니와의 불화는 개츠비의 성격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영화의 도입에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에 엄마와의 갈등이 거의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곳은 야들리다. 리버럴 아트 스쿨로 유명하고 전원풍의 아름다운 교정이 엄마의 고급 취향에도 딱 맞았지만 빚좋은 개살구다. 풀밭에는 진드기가 가득하다. 야들리는 내가 몇 번 몇 달 다닌 저번 대학보다 훨씬 체계적이다. 나에게 적당한 교양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엄마가 보냈던 말만 아이비리그인 사이비 지성의 전당. 엄마는 내가 머리는 높은데 제대로 나의 잠재력을 사용하질 않는다나. 지난 주말에도 포커로 2만 달러나 땄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그 대화 이후 자신의 어머니의 결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불화로 인하여 자기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용인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날, 개츠비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다. 애슐리와 대화를 하다가 또다시 대화가 겉돌게 되자 애슐리에게 우리는 서로 다른 종인 것 같은데, 왜 만나냐고 한다. 그러면서 애슐리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자신은 뉴욕에 남아서 인생을 망칠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는 여자친구의 순진한 듯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연을 알고,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자기 자신의 개성인 가진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인정할 있게 된다. 순진무구해보이는 애슐리를 이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에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과 같이 "불안감, 적대감, 불신"을 가지고서도 그것에 대해 낭만적인 의미화하는 것을 추구하는 첸 타이렐이다. 첸이 궁금해하고 끌리는 것은 그저 개츠비라는 사람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개츠비가 첸과 대화할 때는, 애슐리와는 달리 대화가 겉돌지 않는다. 첸은 개츠비가 미래에 어떤 것을 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뭐가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고 되기 싫은 것만 알 것 같아서 허우적대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아직 전략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만 단순화하며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개츠비가 하기 싫은 것들의 예시, 비행기 조종사나 성직자, 의사 등을 듣고서는 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해준다. 그저 틀에 맞추는 것을 싫어할 뿐이라고, 그러면서 그것이 매력이었어서 옛날에 첸이 개츠비를 짝사랑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개츠비가 데리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이곳저곳을 다닐 때 데이트에 관해서 들으며 세부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듣는 것이 좋아 이것저것 언니에게 질문했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쿨병에 걸린 듯이 운명적인 만남이나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며 조소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 사뭇 비판적인 것 같다. 자신이 마음 속 깊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서 결혼을 하려다가 이건 아닌 것 같으니, 상대의 아주 사소한 웃음 소리 같은 것을 결함으로 삼는 개츠비의 형에 대해서 사뭇 비판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반면에 이 영화에서 긍정하는 대상은 상대의 결함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서조차도 매력적인 포인트를 찾는 챈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챈의 입을 통해서 발화되는 대사.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라지만, 운명적 상대를 만나기만 하면 한 번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운명적인 상대와의 만남에서 풍기는 어떤 달달한 로맨스의 지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시 챈의 대사를 통해서 발화된다. 옛날 영화에 대해서 말하다가. "그냥 빗속에서 연인들이 키스하면 안 돼?  아무리 상업적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좋게만 느껴지는 걸." 상대의 결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낭만을 추구하는 챈은 마지막에 결국 개츠비를 택한다. 아니, 그저 챈에게는 처음부터 개츠비뿐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운명적 상대와 자신이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저 대체할 만한 데이트 상대를 만났을 뿐이다. 그러자 자신의 앞에 개츠비가 나타나고, 그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실낱 같은 가능성이 보이자 둘이 지나가듯이 말한 운명적 상대와의 만남 장소에 그 시간에 간다. 아주 잘 생기고, 아주 똑똑하고, 돈까지도 많은 피부과 의사를 버리고 자신이 운명적 상대라고 생각하고 짝사랑을 했던 개츠비를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운명적 상대라고 생각하는 개츠비가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 그저 한량이라고 생각될지라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개츠비다. 이 영화가 짚어내고자 했던 의미는 주인공인 개츠비가 마지막에 했던 선택의 이유를 곱씹어보면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츠비는 어머니와의 대화 이후에 바뀌었다. 어머니와 불화를 겪으며 자기자신의 내면(불안감, 적대감, 불신)과 정반대의 내면을 가진 애슐리를 동경하며 이상화하던 개츠비는 어머니와의 대화 이후, 어머니의 결함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기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에는 단순한 인과율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떠한 복잡한 정신역동적 기제가 숨겨있다, 주양육자와 자신의 관계라는. 그렇게 세상과 화해하고 자기자신과 화해한 개츠비는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좋아하는 첸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깊이 의미를 되새기지 않으면 돈 많은 집안의 한량이 나오는 단순한 로맨틱코미디 그 이상도 아닌 것 같은 이 영화는 현대인의 삶에 대하여 많은 통찰을 담고 있다. 한국은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50만명 이상의 도시, 혹은 그러한 도시의 위성도시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많은 욕망들과 마주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의미를 추구하지 않으면 속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 이끌려 다니며 자신만의 의미나 낭만에 대하여 말하거나 동경하는 것이 쿨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쉽게 정리하자면, 모든 것이 평등하게 아주 객관적인 양적 지표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일 뿐이다. 사랑은 도파민의 장난일 뿐이며, 한량 같이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과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의 사랑은 '헤어질 결심'과 같이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이해받고 싶어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집착적으로 매달리는 어떤 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사랑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결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상대의 결함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이 영화는 추구한다. 그리고 상업적이거나 뻔하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로망'들을 존중하는 그러한 태도를.



* 이 글은 얼룩소(alook.so)에도 동시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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