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란 말을 남발하는 어떤 이들의 위선에 대하여

2024년 7월 20일에 얼룩소에 올렸던 글

by 심준경

한국에서 어떤 종류의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손쉽게 처리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다쳤다고 해보자. 그러면 자칭 '진보'들은 그 사고를 만들어낸 탐욕을 욕하는 어떤 종류의 담론을 손쉽게 만들어낸다.

탐욕을 욕하는 담론만큼 무익한 담론은 없다. 살아있는 인간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이 없는 자들은 죽은 자들뿐이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에 대한 법률적 기술과도 같은 아주 직접적인 인과관계 속에서만 책임이 있는 강자의 욕망만을 찾아내고 탐욕이란 말로 등치시킴으로써 그들을 탓할 수 있다. 자본가의 탐욕, 행정부의 무능과 같이 손 쉬운 욕하기.

그러나 적어도 국회에 입성한 경험이 있는 진보정당은 그런 식의 무익한 담론으로 사건을 덮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도 사태가 그 지경까지 오게 한 데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입법의 권한을 주었다. 그들은 분명 노동의제를 다룬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다루기로 한 의제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막스 베버는 자신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가 지녀야 하는 윤리는 책임 윤리라고 하였다. 책임 윤리는 한쪽 뺨을 맞거든 다른 쪽 뺨을 내어주라는 기독교적 윤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윤리이다. "무우주론적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라고 말하지만 정치가는 정반대의 격언, 즉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의 만연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 있다.'라는 명제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육체 노동 환경은 매우 위험하다. 나는 육체노동을 컬리와 쿠팡에서만 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재벌이 견제할만한 규모의 스타트업만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할만한 정도의 작업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내 안에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육체 노동 몇 번을 해보고 얻은 결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의 만연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통탄감을 느끼는 정치가를 나는 이 나라에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손쉽게 자본의 탐욕을 욕하고 책임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말한다. 권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욕망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강자의 욕망은 탐욕으로 규정짓고, 약자의 욕망은 권리로 포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언제나 약자의 곁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8시간만 일용직 계약을 맺었다. 지금은 잠시 쉬면서 타이핑 중이다. 이 시간 말고는 노동자가 난 아니다.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난 일시적으로 하는 일이고,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가장 약자들이다.

이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악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약자들을 위해 일할 테니 다시 권력을 달라는 당신들의 위선. 그 위선을 한 번만 되돌아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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