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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Mar 12. 2018

편안하고 익숙한 것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내게 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게 한다

편안하고 익숙한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내게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상관없이 그저 나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들이다.

2014년 10월, 그와 내가 처음 만났던 날이다. 나는 사실 그의 환경보다는 다른 환경에 더욱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 이곳저곳알아본 후 가장 적당한 그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2014년 이후 나와 쭉 함께 했던 맥북[ Mac book]. 4년째 동거 중이다. 어떤 물건은 새것이 나오면 현재 소유고 있는 것이 시시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이 있다. 아무리 신제품이 나와도 지금 것만큼의 매력을 끌지 못하는 것들. 사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것이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물건 중 하나가 바로 나의 노트북이다. 매해 애플에서는 신형의 맥북을 출시하지만 한 번도 신제품을 사고 싶다고 느낀 적이 없다.

하루는 노트북에 물을 한껏 쏟는 바람에 고치는 비용이 30만 원이나 나온적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차라리 새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했지만 거금을 지불하여 노트북을 수리했다. 나는 그냥, 몇 번 떨어트려 모서리에 상처가 있고 내 손때가 구석구석 타 꼬질꼬질 해 진, 지금의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글이라기보다는 메모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늘 상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던 일이었다.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이 생기면 항상 노트북을 들고 나갔고 혼자 그렇게 아무 글이나 끄적끄적 쓰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도, 과거했던 여행들을 추억하며 글들을 써 나갈 때도 항상 함께 였다.

 

새로운 꿈을 갖는다는 건
일상에 작은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


언젠가 내 글도 누군가가 읽어줄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나도 책을 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이 작은 나만의 공간에 내 이야기를 조금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어쩜 이 익숙함과 편안함은 내 작은 꿈과 추억을 함께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행할 적마다 내가 외로울 적마다 나와 함께 했던 기록들과 항상 내 옆에 있었던 내 노트북.


고향 집에 가면 유난히 일찍 잠이 든다.

보통은 밤 12시 혹은 새벽 1시 심지어 새벽 2시 잠이 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 방이 불편한 것도 어색한 것도 아니다. 나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내방을 좋아한다.

고향인 제주도에는 몇년전 이사하면서 내방이 완전히 사라졌다. 엄마는 내 물건들을 창고에 더미처럼 쑤셔 넣어 놓았다. 제주에 내려가면 내가 머무는 방은 아빠가 쓰는 작은 공간이고 그래서 내 물건들과 내 것이라고는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제주만 내려가면 유독 밤 10시부터 졸려오기 시작한다. 여지없이 밤 11시가 되면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자려고 누우면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잠이 드는데 왜 제주만 내려가면 나는 그렇게 일찍 잠이 드는 걸까?


내 물건도, 내 흔적도 모두 사라졌지만
익숙한 만은 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라고 가족이 있는 고향이 주는 그 편안함.

추억을 소환할 만한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익숙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친숙함과 평온함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냄새와 공기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건 아닐까.

복잡한 도시의 소음이 아닌 느리게 흘러가는 정취와 분위기, 내가 항상 느끼며 자랐던 그 냄새이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집밥과 하루만 지나면 여지없이 들려오는 잔소리들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게 가장 큰 안정감을 전달해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속 변하고 있다.

세상도 계속 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내게 편안함을 주는 것들.

내게 추억과 꿈을 알려주는 냄새와 공기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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