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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Mar 18. 2018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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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어."
누군가에 입에서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들어 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아니 들어본 적은 있었던가?



밤 11시. 발리 덴파사르에 있는 응우라라이 국제공항[Ngurah Rai International Airport] 도착했다. 한국에서 미리 클룩[KLOOK]이라는 앱을 통해서 차량을 예약해 두었다. 공항 도착 입구에 내 이름 판넬을 들고 있는 그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클룩 차량 운전자를 보니 '드디어 잘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다. 늦은 시간이라서 차가 막히지 않아 1시간 이내 호텔까지 도착한다고 한다.

내가 처음 만난 발리 현지인. 시종일관 웃는 모습에 그는 차에 타자마자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혼자 여행 온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작은 배려 였던 거 같다. 발리는 처음인지, 처음 온 소감은 어떤지, 남한과 북한 사이에 현재 관계는 어떤지,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등등등..

쉴 새 없는 그의 질문폭탄에 사실 조금 귀찮았던 것도 있었는지만, 이방지여서 그런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며 내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고 하였다. 호텔 도착하면 밤 12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다. 갑자기 괜스레 미안해졌다. 밤 12시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란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이런 생각을 눈치라도 챘는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여행객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다 보면 굳이 여행하지 않아도 항상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 하며 10년째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행복해 보이는 척하는 것과 정말 행복해 보이는 것쯤은 나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순간 생각에 잠겼다.


나도 그처럼 행복해 할 수 있을까?


아마 내가 그였다면 하루에 수십 번 불평불만을 쏟아 냈을 것이다. 운전만 하면 됐지, 차에 탄 고객에게 굳이 말을 건네지도 않았을 것이다. 힘들어 죽겠다며, 아마 마지막 손님을 속으로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9-12 가 말이 되냐며, 어떻게 일을 이렇게 시킬 수 있냐며, 혹은 그렇게까지 노동을 해야 하나 내 상황에 못 견뎌했을지도 모른다.



여행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숙소 근처에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는 일이다. 짧은 기간이라도 마치 나의 동네와 같은 묘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매일 카페 주인들과 인사를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연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많은 카페들 중에 그 한곳을 발견하는 일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일과 같다. 딱 보는 순간, '아, 저기다. 저곳이다.' 라는 느낌이 오는 공간이 있다. 저 카페가 여행 중 내 작은 일상을 차지해 줄 곳이구나 하는. 우붓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자마자 한눈에 나는 알아봤다.


저 곳이구나.

2층으로 구성된 이 카페는 1층은 커피를 만드는 공간과 몇 개의 좌석들이 있고 2층은 나무로 살짝 가려진 작지만 아늑한 공간이 존재한다. 1층 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카페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커피를 만드는 그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음악에 한껏 취했지만 커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눈빛도 느낄 수 있었다.  

오는 손님, 가는 손님에게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를 지어 보냈고, 우렁찬 목소리로 “Thank you “ 를 외친다. 그는 항상 흥이 난 모습이었다. 그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진짜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즐겁냐 물어보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행복하고 또 일을 즐기고 있음을. 그 미소 덕택에 그가 참 좋은 사람인 것만 같아 보였다.


제레마히, 샤런, 테런 그리고 타이먼.

4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자신들을 "Digital Nomad   [디지털 노매드]"라고 소개했다. 서로 안 지는 10달이 되어 가고 이렇게 발리에 모여 일하기 시작한 건 2달쯤 되어 간다고 했다. 이들이 구상하는 일은 '여행투어패키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직접 투어도 해 줄 예정이라고 했다. 제레마히가 이 사업을 계획했고 나머지 세명에게 제안하였다고 했다. 즉, 그가 그들에게 상사 혹은 대표이다. 테런은 제레마히 옆에서 그의 업무 보조를 맞춰주는 비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샤런은 발리 투어 패키지 기획을 짜고 있으며, 타이먼은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만드는 포토그래퍼였다.

이들은 이렇게 모였지만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란다. 제레마히가 하는 개인 사업은 디지털 노마드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컨설팅업이었고, 샤런은 하와이에서 '하와이 투어 패키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1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쪽으로 넘어 온 이들. 확신에 찬 모습에 여유를 볼 수 있었다.



도전을 꿈꾸지만 과감하게 도전해 본적은 없다. 변화를 원하지만 도저히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의 편안함은 버리기가 힘들다. 그 안정감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허다하다. 변하고 싶은데 변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스스로에게 짜증 부리기도 하고 내 인생은 왜 이리 지루하고 재미없을까 하며 온갖 불평을 쏟아내기도 일쑤다. 남들 인생은 항상 신나고 다이내믹해 보인다. 이걸 줘도 저걸 줘도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는데 선수이다.


이것은 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살면서 내게 주어진 것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왔을까? 내게 주어 진 능력치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 왔던 걸까? 나는 아마 그들과 다른 눈으로 내 앞에 놓인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거 같다.


앞으로 나는 현재의 내게 주어진 일들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내게 참 많은 걸 알려주었다. 내 인생에 불쑥 찾아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내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며 나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이래라저래라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며 훈계하지 않았다. 그 저 내 눈으로 보고 내 마음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발리 우붓은 내게 그렇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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