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da Aug 09. 2017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걷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어느 날 갑자기, 심지어 너무 이른 시간에 이제 출발해야 할 때구나 하는 느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떤 장소나 사람의 곁에 떠나야겠다는 느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번에도 그렇다. 걸어서 세계일주를 시작하기로 한 전날에도 나는 가방조차 싸놓지 않은 상태였고, 할 일도 산더미였다.

-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중,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저자인 올리비에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철칙이 있다.

"도보로 여행할 것". 즉, 엔진 차량을 이용하지 않기이다. 그는 몇 년에 걸쳐 기간을 정해 놓고 특정 지역을 도행으로 여행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다음 여행 시에는 그가 바로 전에 끝낸 그 여행지에서 다시 출발한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시작했고 헝가리 미슈콜츠까지 이르렀다. 마쳤다 혹은 끝냈다 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건 시작점은 있지만 그의 일곱 번째 여정인 미슈콜츠가 마지막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어딘가를 지금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책은 완성된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친구들에게 걷기 여정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모두 그와 함께 할 것처럼 반응했다. 결국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동행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혼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그의 도보 프로젝트. 그는 그저 걷는다. 걷다 보면 많은 복잡한 생각과 일들이 일어 난다. 때론 배고픔과 싸워야 하기도 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찾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건 그는 여전히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걸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배고픔도, 피곤함도 아니었고 바로 어둠이었다. 어둠은 고독이 아닌가 싶다. 행복과 슬픈과 같은 감정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외로움 같은 것. 그래서 그는 걷기 동료를 찾았고 함께 걷기로 한다. 동료는 동료일 뿐 서로에게 간섭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세운 철칙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혹은 같은 도착 지점을 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걸어가는 동지일 뿐이다. 걸으며 겪게 되는 어려움과 환희를 같이 공유할 친구인 것이다. 또한 배낭에서 먹을 것들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짐을 줄여 나갔고, 오래되고 무거운 텐트 대신 가볍고 설치가 쉬운 텐트로 교체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에게 빨리 걸어야 하는 속도보다 장소 하나하나를 거쳐 가는 그 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란, 어깨에 커다란 배낭을 멘 채로 진흙탕 속을 걷는 게 아니다. 내가 나약했는지, 내가 눈 가리고 아웅 했는지, 또는 근육을 더 긴장시키고 힘을 내야 하는 순간에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는지 뒤돌아볼 때, 내 의식 속에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이다.

-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중,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극한의 도보 여행을 통해서 어쩜 그가 깨닫게 된 건 인생 여정 일지도 모르겠다. 걸으면서 그가 터득했던 것처럼 우린 사실 겪고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추위도 육체적인 고난도 아닌 어둠임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혹은 아침에 마주한 카페에서의 달콤한 커피와 크루아상의 맛에 취해 도보를 지체하게 되는데 결국 그 때문에 새벽이 아닌 오후가 다 되어서야 걷기를 시작하다 하루 종일 땡볕을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나의 여행도 언제나 도보여행이다. 물론 저자인 올리비에 블레이즈가 하는 도보여행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나는 걷다 지치면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발에 물집이 일어 도저히 한 발짝도 뗄 수 없을 때는 큰 마음먹고 택시를 타기도 한다. 그가 했던 거처럼 숲을 거치고 산을 오르는 대신에 건물 사이사이로 5분만 걸어도 카페가 나오는 거리를 걷는다.

"엔진 차량을 이용하지 않을 것"과 같은 그가 세운 철칙 대신에 가능한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나만의 철칙에서의 여행이다. 즉, 구글 맵을 켜고 도착지점을 지정한 후 30분 내외로 도보가 가능한 거리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대신 걷기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희한하게 발이 끊어질 거 같은데도 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30분이면 도착한다는 구글 맵에 가리킴을 비웃기라도 하듯 2시간 걸려 도착지로에 다다른 적도 허다하다. 아마 걸으며 보이게 되는 새로운 풍경들, 그리고 어렵사리 결국에는 원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의 왠지 모를 쾌락이 나를 끊임없이 걷는 여정으로 이끌었던 듯하다.

어쩜 나는 스스로에게 느려도 괜찮다고, 오히려 느리게 걷다 보며 보이는 소소한 일상을 알려 주려 했던 건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느리지만 결국 원하는 목적지에 왔으면 됐다, 하는 가르침을 알려 주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세운 나만의 도보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나에게 가파른 길, 산의 고개, 숲 속 갈림길을 걸으면서 늘 생각한다.  이 길을 모두 걷고 나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보물을 뜻밖의 선물로 선사받을 수 있을 거이며, 어쩌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대부분 아무것도 없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더 먼 곳을 바라볼 줄 알게 되었으니 아무려면 어떠한가. 이제는 내가 어디로 가야 속 시원히 알려주는 이정표를 볼 수 있고, 다음 오솔길로 들어서려면 어디서 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내 두 다리가 열심히 이끌어주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중,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우리는 경험 보고 살결에 딱지가 생긴 후에야 다음에 아픔을 극복할 방법을 조금은 터득하게 된다. 지름길로 가려고 꼼수를 쓰다가 결국 그 꾀에 넘어가는 경험도 많이 있다. 느리지만 묵묵히 걷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는 이리저리 치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또한 끝나지 않는 그의 도보 여행처럼 우리의 삶도 사실 끝이 없다.


인생이라는 여정이 걷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시작되는 도보 여행인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