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내셔널 갤러리, 나만의 방법으로 감상하기
출장이다 보니 월화수목금 주중 내내 사무실과 호텔(집)을 오가는 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선 런던 하면 생각나는 대표 박물관과 미술관인 대영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해 볼 참이다. 어학연수 이후에 런던 여행을 두 번 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미술관이며 박물관이며 하는 곳에 관심이 없어 그저 지나치기만 했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이제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여행을 오면 이렇게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온다. 물론 그림을 보는 것도 좋지만 현지인들이 미술을 대하는 태도, 그림을 감상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갤러리라는 서양에서 발생한 그들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해서 친구와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모습, 자신의 아이에게 그림의 대한 생각을 전하는 엄마의 모습, 그룹 지어 도슨트에 설명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이 미술관을 방문했다고 인증 샷 찍기 바쁜(나를 포함) 우리들과는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름을 느낄 수가 있다.
다양한 관들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world collection이라는 관으로 입장하는 순간 화려한 색상에 시야를 빼앗겼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방패도 있고, 술잔, 그릇, 책 커버, 주얼리 등의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5세기 16세기 언제인지 모르지만 옛날 옛적 만들어졌다는 유리잔을 보고 있다.
뭐든 원한다면 하루에도 수만 개의 상품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현대의 모습과 달리 그들에게는 이 유리잔 하나를 만드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얻고 쉽게 버려지고 또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와는 다른 그들의 삶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참 아무것도 아닌 이 유리잔을 만들기 위해 한 땀 한 땀의 수공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유리잔 표면에는 다양한 장식이 곁들여져 있다. 21세기가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보존된 유리잔, 그 시대에 이 유리잔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소중히 다루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을 보니 화려하게 장식된 책자 같은 게 보인다. 무언인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사냥 목록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이 화려한 금색 판자 위에 빼곡하게 적힌 사냥 목록을 보니 어느 시대에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1순위였음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핸드폰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이 사냥 목록을 기억하기 위해 정성 들여 파 놓은 금색 판자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뭐든 쉽게 구할 수가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편하고, 이를 누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 채 살아가는 내 모습에 반성하게 되었다. 관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 곳에 전시되어 있는 하나하나를 보다 보니 금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림에 문외한 나지만 여러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내가 특히 관심 가고 좋아하는 그림의 취향이 생겼다.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19세기의 그림들. 뭐 쉬운 말로 풍경화들이 나는 참 좋다. 내셔널 갤러리는 특히 19세기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참 많이 전시되어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모네의 작품들도 여러 점 있었다.
빛과 함께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한 인상주의 작품들이 좋은 이유는
그림을 가만히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시대 어는 한 벌판 위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사진으로 담아내는 우리와는 달리 먼저 붓을 꺼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어찌 보면 현대 컨텐 퍼러리 아트라고 일컫는 작품들 중에는 이런 풍경화 작품이 없는 이유도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광경을 기억하고 담아내는 일보다는 사진을 찍고 기억하는 것에 익숙해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풍경화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소소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모습도 같이 보인다. 이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일반 사람들의 삶의 애환도 조금은 느낄 수가 있다.
어느새 시간이 6시가 되어 갤러리를 나왔다.
런던이 참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주 주말에 내셔널 갤러리에 다시 방문해 그림들을 찬찬히 감상해 봐야지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