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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Mar 27. 2022

생각과 기록

생각과 기록의 연관 관계

WHO 성인 ADHD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10 원인  하나며, 치료해야  정신과적 장애라고 밝혔다.  세계 성인의  6.76% 겪는 증상임에도 오늘날 성인 ADHD 대부분 '성격 문제' 치부된다.

'게으르다' 오해
정동청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BBC 코리아에 성인 ADHD 환자가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한" 모습으로 쉽게 오해를 받는다고 말했다.

- 출처: https://www.bbc.com/korean/news-58114018

나의 게으름이 성인 ADHD일수도 있겠다는 게 그 생각의 시작이었다. 내가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생활의 작은 나쁜 습관들이 습관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을 했고, ‘그냥 난 이렇게 태어난 인간이야’ 라며 치부했던 것들이, 병이지만 고칠 수 있는 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 시작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생각들은 한동안 나를 사로잡지만, 일상은 그 생각들을 다른 생각들, 즉, 일상의 또 다른 소소한 문제들로 다시 채워 넣었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그것들을 금세 잊게 한다. 그래서 매일 기록을 하기로 했다. 그날 갑자기 든 생각들일 수도 있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일 수도 있고, 오늘 결심한 계획들은 실천했는지에 대한 것들을 수도 있고, 이런 나의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매일 하루를 정리하며, 이따금 2일 치를 몰아서 쓰는 적도 있었지만, 매일매일 내가 하는 생각들과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성인 ADHD 증상 첫 번째, 게으름 - 몇 년간 입지 않는 옷들이 한가득이다. 옷장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버티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입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입지 않고 옷장 어딘가 쑤셔 박혀있는 옷들.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그리 낡지도 않았고, 입을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손이 가지 않았다. 한 번은 옷장을 뒤져 입지 않는 옷들을 모두 꺼내었다. 입을만하고 깨끗하지만 입지 않는 옷들과 오래되어서 버려야 할 옷들로 분리했다. 입을만했지만 입지 않는 옷들은 헌 옷 수거함에 가져다 두기로 결심했고, 이 옷들을 다시 잘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렇게 또 그 옷들을 옷장에 방치해 두었다. 일본에서의 삶은 그다지 한국처럼 편리하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여기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거꾸로 인 상황도 있다. 어쨌든 아파트마다 헌 옷 수거함이 있지는 않았다. 인터넷으로 헌 옷 수거함이 있는 곳을 찾아야 했고 그곳을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일련의 행동들이 매우 귀찮아 겨우 시간 내어 분리해 놓고 그걸 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매일 하는 기록 - 별다른 일들을 적지는 않지만 매일 쓸 말들이 가득했다.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고, 일을 마치는 반복적인 하루를 살아도 하루에 드는 온갖 잡생각들로 인해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오늘도 별 탈 없이 하루가 갔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동네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날씨가 좋아 재택근무 중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고 커피를 사마 셔 기분이 좋았다.’와 같은 기록, 혹은 ‘뭔가 모르게 울적하다. ‘오늘은 기운이 없어 일을 열심히 하지 못했다.’, ‘업무 중에 실수가 있어 기분이 안 좋았다.’와 같은 기록, ‘어제, 오늘은 행주들을 삶아 보기로 다짐했는데 행주들을 깨끗하게 삶았고 삶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와 같은 기록들이다. 매일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은 큰 힘을 갖는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하루처럼 보이지만, 내가 가지는 매일의 다른 감정들을 정리함으로써 모든 하루를 다른 날들로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과 기록 - 드디어 헌 옷 수거함에 옷들을 갔다 놓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동네에 헌 옷 수거함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고, 퇴근하자마자 바로 나가 버리고 왔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참 가벼워졌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은 하는 순간, 일상이 조금 바뀐다. ‘그거 하기로 다짐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한동안은 죄책감을 느낀다. 분명 어제까지는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죄책감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생각과 동시에 나는 그 생각들을 실천하지 않음에 작은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기록. 하지만 기록을 통해 결국 그 생각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결국 나는 드디어 헌 옷 수거함에 옷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말이다.


내게 칭찬거리가 생겼다. 하루를 마감하며 기록하며 나를 칭찬할 수 있는 거리가 생겨 기뻤다. 매일 일기처럼 쓰는 이 기록은 내가 내게 칭찬받기 위해 행동들을 하게 한다. 누구의 칭찬도 아닌 내게 내게 하는 칭찬. 매일 일기를 써보자 다짐을 했던 때, 걱정이 조금 들기도 했다. 딱히 쓸 말이 없는데 이 일기를 쓰는 것이 필요한 일일까 하고 말이다. 작은 다이어리를 사서 쓰기 시작했지만 일기장 공간의 부족하다. 내 일상은 반복적이고 드라마가 없는 하루였지만, 내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 매일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느끼게 해 주었다.


생각과 기록의 연관 관계 - 생각과 기록을 통해 나는 내게 칭찬을 받고 싶어 행동을 하게 되었다. 먹고 바로 설거지 하자, 빨래는 제때제때 해서 걸고 잘 게어놓자와 같은 고쳐지지 않았던 고질병들이 현재까지는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뭉개어져 없어지기 전에 기록을 하다 보니 그 생각들이 흩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기록을 통해 그건 지켰지 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한 생각들을 적어 놓고 있다.


기록하며 나는 나와 대화를 시도 중이고, 나는 내게 칭찬받기 위해 노력 중에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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