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난 20대와 30대는 여행으로 점쳐질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요즘 인기가 있는 여행 유투버들처럼 많은 여행지를 여행했던던 것은 아니다. 지난 시간들 중 나의 인생의 중요한 카테고리로 여행을 뽑았던 건, 여행을 했던 기억들이, 여행하면서 했던 생각들이, 그리고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면 1년에 2번 정도 해외여행이란 걸 갔었다. 그 해외여행은 길면 10일 정도일 때도 있었고 가까운 곳은 3박 4일 정도의 일정이었다. 그러니 1년 365일 중 여행으로 차지했던 일수는 14일 정도로 365일 중에 겨우 10%도 미치지 못한다. 맞다. 대학 졸업 전에 어학연수를 했던 1년의 시간도 여행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내 인생에서 할머니가 되어도 곱씹을만한 여행 기억들이 있다.
내게는 그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에 많은 것들이 어학연수 경험으로 인해 변했다. 런던에서 어학원을 다녔는데 당시 매주 금요일밤이면 어학원 옆 펍에 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정말 수줍음이 많았다.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친구들을 사귀고 싶지만 낯가림이 심했고 그래서 누군가 먼저 내게 와서 말을 걸어주기를 늘 기다기만 했다. 어느 날 당시 같은 반 한국언니가 그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먼저 말을 안 하면 아무도 너에게 말 걸어주지 않을 거야. 왜 기다리기만 하니? 결국 친구가 필요한 건 너잖아.”
<학원 옆 펍>
언니에 그 한마디 조언이 나의 모든 1년의 어학연수 시절을 변하게 했다. 결국 그때 친구가 필요했던 건 나였는데 수줍음이 많다는 핑계로, 나는 왜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걸까라는 반문을 하며 수줍던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학원 친구들에게 펍에 가면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친구가 생겼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은 먼저 발품을 팔거나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door to door”라는 방식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다녔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식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혹시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지 묻고 나중에 사람이 필요하게 되면 연락 달라고 미리 프린트해놓은 내 이력서를 돌리고 다녔다.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다음 카페에 유명한 영국 생활과 관련한 카페에서 방을 구할 수 있었지만 영국까지 와서 한국 사람들과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방을 어찌 구하는지 알아보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gumtree.co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방을 보고 직접 전화를 걸어 집을 계약하는 방식과, 다른 하나는 슈퍼 앞에 동네 소식지처럼 걸려있는 보드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방 렌털과 관련한 메모들도 있었다. 사이트 통해서 직접 전화를 하거나, 그런 슈퍼 앞에 붙여진 메모를 보고 전화를 해 방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슈퍼 앞 메모를 보고 나는 방을 구했다. 생각보다 떨렸고 생각보다 그런 일들이 재미있었다. 메모를 보고 전화를 해 약속을 잡고 집을 보고 집이 마음에 들면 집주인과 직접 계약을 했다.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에 주인은 방 하나를 내게 내어주었고 나는 방 하나를 셰어를 받아 생활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수줍던 나는 그런 환경에서 수줍음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수줍음이 사라졌다라기 보다는 어쩜 생존을 위해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던 거 같다. 나는 그렇게 1년을 지냈다.
어학연수가 끝나 14일간 혼자 유럽 여행을 했다. 내가 선택한 장소는 `파리-로마-피렌체-베니스-니스`로의 여정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요즘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는 당시의 온도, 습도, 분위기 그리고 냄새가 모든 기억이 난다. 아마 내 평생 다시 그때와 같은 여행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파리와 로마 그리고 베니스에서는 한인민박을 이용했다. 그때는 다른 옵션을 생각하지 못했다.
돈 없는 학생 여행객에게 한인 민박만큼 최고의 조건은 없었기 때문이다. 도미토리룸을 썼는데, 저녁은 한식을 줬고, 운이 좋으면 주인분께서 공짜 와인을 주셨다. 첫날은 혼자 여행했지만 둘째 날부터는 같이 머물던 여행객들과 가고 싶은 장소가 맞으면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혼자 왔지만 혼자이지 않았다. 민박집에서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같이 투어를 다녔고 금세 친해지기도 했다.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면 또 모르는 누군가가와 원래 있었던 여행객들로 늘 가득했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같이 했던 이탈리안 친구를 만났더랬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당시에도 제일 저렴했던 노키아 핸드폰이었다. 한국에서 쓰던 핸드폰을 해외에서 쓸 수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영국에서 가장 저렴한 핸드폰을 구매하고 번호를 개통했었다. 친구가 이탈리아로 돌아갔던 시점과 내가 로마로 여행을 갔던 시점이 비슷했다. 내 여행일정을 알려주고, 친구가 로마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던 때 예를 들면 몇 월 며칠 몇 시에 로마 이 식당에서 보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친구는 이탈리아 번호를 내 수첩에 적어주었다.
로마에 도착 후에 지도를 가지고 약속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도저히 약속 장소를 찾을 수 없었고 지나가던 이탈리아 사람에게 상황 설명을 했는데, 그분이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그분 전화로 친구에게 대신 전화해 줬고 친구가 있는 장소를 확인해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 만들었던 전화번호는 이탈리아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런던에서 구두로 한 약속,
수첩에 적힌 친구의 핸드폰 번호,
그리고 지도를 가지고 찾아서 만난 친구.
지도를 가지고 다니며 여행하던 시절은 길을 찾다 헤매다 결국 현지인처럼 보이는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렇게 우연히 길거리에서 길을 물어봤던 누군가는 친절하게 친구에게 전화를 해줬고 나와 그 식당까지 같이 가주었다.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한 약속은 몇 월 며칠 몇 시에 거기서 보자고 그렇게 구두로 약속을 하고 중간에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그렇게 만났던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내 여행 경로는 당시 내가 생각해도 조금 생소한 경로이긴 하다. 처음 파리로 들어갔고,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를 둘러보고, 베니스에서 1박을 한 후 나는 니스로 넘어갔다.
베니스 민박집에서 겨우 1박을 하는데도 혼자 온 나를 알뜰히도 챙겼던 같은 방을 썼던 민박집 여행객들.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의 겨울은 혹독하리 만큼 추웠다. 그래도 베니스 곤돌라도 탔고, 수상 택시를 타며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때 곤돌라에서 빨갛게 얼어버린 볼로 찍었던 사진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2박 같은 1박 2일을 베니스에서 보냈다. 두 번째 떠나는 날은 밤 기차를 탔기 때문이다. 짐을 싸고 기차시간이 남아 기차시간까지 민박집에 있었다. 베니스에 오자마자 만난 민박집 사람들과 1박 2일을 여행했고, 추운 겨울 곤돌라도 같이 타던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이메일 주소와 싸이월드 주소를 교환했다. 그것이 그때는 한국에 가서도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Enjoy 유럽”이라는 여행 가이드 책자를 가지고 다니며 여행을 했었는데 거기에 당시 만났던 사람들의 이메일 주소와 싸이월드 주소를 적었었다.
수첩에 메모를 해야만 했던 그때, 수첩이나 메모지가 잃어버리면 영영 연결고리는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니스로 향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그때 베니스에는 눈이 왔었다. 기차역에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큰 캐리어와 함께 눈 오는 기차역에 덩그러니 서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쓸쓸했지만 설렜고,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다시 한 도시를 떠나 혼자서 다시 다른 도시로 떠나려니 쓸쓸한 마음이 들었고, 또 새롭게 보게 될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설레었다. 눈 오는 밤 기차역은 나를 외롭게 했지만, 단지 하루 만났지만 나를 걱정해 주고 조심히 여행하라며 꼭 안아주던 민박집 사람들이 온기와 체온이 가시지 않았기에 외롭지 않았다.
참 웃기게도 그때 기차역에서의 오묘한 감정이 여행 후 가장 기억이 남았다.
<당시 기차역>
<기차 안의 모습>
니스에는 한인 민박이 없었다. 그리고 니스에서 묵을 숙소를 예약하지도 않았더랬다. 베니스에서 니스까지 한 10시간 정도 걸렸고 니스에 도착하니 아침이 되었다. 무작정 도착한 니스. 역을 나오면 역 주변에 게스트 하우스가 많았다.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 방이 있냐고 물었고 방이 있다는 곳에 1박을 예약했다. 그때 게스트하우스는 남녀 혼숙 방이었다. 그때 혼숙 방인지도 모르고 방에 있는데 호주 남녀(커플은 아니라고 했었다)가 들어와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샤워실은 더 가관이었다. 동전 같은 걸 받았는데 그걸 넣으면 물이 10분 정도밖에 안 나왔다. 샤워하다 물이 끊겨 겨우 몸을 닦고 나왔다. 그래도 겨울이었던 당시 추운 베니스에서 따뜻한 니스는 천국처럼 느껴졌다.
하루 그렇게 니스에서 보내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나는 영국에서 쓰던 계좌는 당연히 프랑스에서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유럽에는 소매치기가 많다고 주변에서 조심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에 통장에 돈을 다 뽑지 않고 왔다. 모자라면 돈을 빼서 쓰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유로스타를 끊으려 하니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이 부족해 돈을 뽑으려 하는데 돈인출이 안 되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런던에서 만든 통장카드였다. 신용카드 기능이 되지 않는 단순히 돈입출금만 되는 그런 통장카드였다. 그때 나는 신용카드도 없었다. 돈은 오롯이 저 통장카드에만 있었다. 돈을 뽑을 수 없으면 나는 정말 구걸을 하지 않는 이상 돈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막막했다. 기차역에서 무료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검색을 해보니 런던으로 가장 싸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유로버스라는 것을 타는 것이었다. 유로 버스비를 확인해 보니 한 만 원 정도였고 내가 그때 한국돈으로 한 이만 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유로 버스를 타고 런던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은 밤 버스행 밖에 없었다. 돈은 이만 원 밖에 없었고 파리에는 오후 3시쯤에 도착했다. 파리에 왔지만 더 구경을 할 수도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로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버스 티켓을 샀고 남은 돈으로 저녁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구매했다. 그렇게 유로버스라는 것을 타고 나는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다.
14일간의 유럽 여행은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다. 사실 여행 가기 전에는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 100번도 했었다. 혼자 14일간 여행을 하려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숙박도 정해야 했고 여행 일정도 짜야했는데, 실제 여행이란 걸 처음 해보았던 내게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는 내가 했던 여행은 그때였기 때문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까다로워졌다. 당시에는 묶었던 한인민박은 도미토리 방식으로 한방에 2층 침대가 3개가 놓여있었다. 여행 전 예약을 할 때 그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단지 혼자가도 한인민박에 가면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저녁으로 한식이 나온다는 그 두 가지 사실에만 집중했었다. 지금은 한방에 6명이 묶는 방을 예약하지 않는다. 화장실을 같이 나눠 쓰는 일도 상당히 괴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굳이 한식이 나오는 곳을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가 아니면 정말로 할 수 없었던 여행. 앞으로의 내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여행. 나는 종종 사람들이 “그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니, 젊으니깐 좋겠다”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 나이로 무언가를 하려는 걸 한정하고 좌절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뭐, 그때 아니면 어때, 지금 하면 되지.. 라며 속으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단정 짓는다.
그런데, 그때 했던 내 여행은, 경험은, 그때가 아니면 정말로 할 수 없었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