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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Mar 22. 2017

잔상

채식주의자

며칠 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덮었을 때,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먹먹하고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게 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매우, 평범하기 그지없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흔녀'인 한 여자의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해서 이를 지켜보는 남편의 시각, 그녀의 형부의 시각 그리고 그녀의 언니의 시각으로 (그녀가 변화하기 시작한 시간부터) 같은 시간을 다른 시선으로 소설은 풀어나간다. 그녀는 어느 순간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점점 말라갔으면, 급기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고, 결국 정신 병원으로 가게 된다.

여자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왜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 또한 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끝내 음식을 아예 거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나오지는 않는다. 어쩜 작가는 그저 독자들에게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과제를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무심한 듯 스쳐 지나지만 결국 이야기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는 그녀의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영혜는 그녀보다 네살 어렸다. 터울이 제법 져서인지, 그녀들은 자매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티격태격하는 갈등 없이 자랐다. 손이 거칠던 아버지에게 차례로 뺨을 맞던 어린시절부터 영혜는 그녀에게 무한히 보살펴야 할, 흡사 모성애와 같은 책임감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발뒤꿈치에 새카만 때가 끼어 있고, 여름이면 콧잔등에 땀띠가 빨긋하게 돋던 여동생이 성장하여 결혼하는 것을 그녀는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동생의 말수가 적어진 것이 내심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 역시 신중한 성격이긴 하지만 분위기에 따라 싹싹한 편인 데 반해, 영혜의 심중은 어느 때건 들여보기는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 때로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 '채식주의자' 인용


결국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이 그녀를 움츠리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둘째 딸이라는(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낀 그녀) 자라온 환경에서 그녀로 하여금 참고 억누르도록 살아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주 내성적으로 눈에 띄지 않고 아주 평범하게..


잔상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잔상에 대한 사전적 의미
1. <의학> 외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지속되어 나타나는 상. 촛불을 한참 바라본 뒤에 눈을 감아도 그 촛불의 상이 나타나는 현상 따위이다.
2. 지워지지 아니하는 지난날의 모습.
<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운동장, 저 벤츠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그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어느 순간, 어떠한 방식으로든 받았던 상처나 혹은 기쁨은 마음 깊숙이 잔상을 남기고 그 잔상이 결국 언젠가 어떠한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Episode 1)

나는 어렸을 적에 대한 한 가지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아빠는 공무원이고 엄마는 가정주부이셨다. 2남 1녀 중 막내인 나는 애교 많은 막내딸이었다.  

어렸을 적 엄마는 내가 잠자리에 들 적이면 방으로 들어오시곤 하셨다. 내가 이불은 잘 덮고 자는지를 항상 확인하셨다. 분명 나는 반쯤은 자고 있었지만 항상 엄마가 들어오고 있구나를 느끼고 있었다.

' 아 엄마가 들어오셨네, 엄마가 내 이불을 다시 잘 정리하고 덮어 주시는구나.'

엄마가 이불을 정리하고 내방을 나가시면서 나를 한번 꼭 껴은 후 내방을 나가시곤 하셨다.

Episode 2)

나는 늘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했다 (물론 지금도 변함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가 나를 깨우면,

' 엄마, 5분만 더 잘게. 5분만 있다 깨워줘'

라고 소리치곤 했다. 이런 나를 잘 알기에 중,고등학교 적 엄마는 원래 깨우는 시간보다 일부러 항상 30분 일찍 나를 깨우시곤 했다. 가끔은 내방에 와서 나를 깨우시다 내 옆에 누워, 나를 꼭 껴안으시고는 나와 함께 그렇게 10분을 눈을 감고 기다려 주셨다. 그때 안아주던 엄마의 품이 참 좋았었다.

이런 잔상은 나로 하여금, '아, 나는 사랑받는 아이구나'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부유하게 크지도, 특별할 것 없이 자라지도 않은 나지만, 처음 본 나를 보면 사람들로 부터 인상이 밝거나 혹은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느낌이다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위안부 할머니를 돕기 위해 찾아간 어떠한 청년이 한 할머니를 부르며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할머니가 순간적으로 부르르 떨더라는 기사였다. 할머니는 아직도 모르는 남성이 할머니를 부르거나 건들기만 해도 무서울 때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어떠한 잔상을 품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잔상이 웃음을 띄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웃음을 주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반면 마음 깊숙이 차마 입으로 꺼내기 힘든 상처의 잔상도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는 언젠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삶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상처의 잔상의 경우 아무 표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문건 아닐 것이다. 단지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마음을 괴롭히기에 그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는 것은 아닐지.

아픈 잔상에 대해서 최소한의 치유는 필요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아픔과 기억을 그 어느 누가 완벽하게 치유하고, 공감해 줄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이상 그 아픔을 100%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진심 어린 사과는 반드시 필요 하다. 그 상처를 준 사람들, 그리고 그 후손들로 하여금 바라는 것이고 그래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믿기 힘든 폭력, 성폭행, 갑질이라고 일컫는 가진 자들의 무례한 소행들..


위안부 할머니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 난다. 아무렇지 않게 주는 상처는 그 어느 누군가에게 기억 속, 마음 깊은 곳에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되어 깊은 잔상으로 남겨질지 모르겠다.

완벽하게 그 아픔이 지워지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잔상을 없애기 위한 그리고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아마 채식주의를 읽고 먹먹해졌던 건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행동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되었고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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