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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Apr 30. 2017

미드나잇 인 파리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

친오빠가 생일선물로 애플에서 나온 블루투스 이어폰을 갖고 싶다기에 큰 맘먹고 선물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물량이 부족해서 주문을 하고 물건을 받아보기까지 6주가 걸렸다.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린 아이폰 이어팟은 기대 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블루투스 이어폰을 샀을 때, 짧아진 줄 때문에 너무 편하다고 좋아했었는데 벌써 익숙해졌는지 목 뒤로 감기는 이 이어폰 줄 조차도 거슬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애플에서 나온 이어팟에는 이어폰에 줄이 없이 귀에만 꽂으면 된다. 이어폰 케이스에 넣기만 하면 이어폰이 충전이 되고, 음악을 듣다 한쪽 이어폰만 빼도 저절로 듣고 있던 음악이 중지가 된다. 오빠에게 생일선물을 주기는 했지만 어찌나 탐이 나던지, 새로운 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나 역시도 신형 핸드폰이 나올 때마다 구매욕구가 늘상 치솓는다. 바꿔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며 실제로 그 욕구를 못이겨 1년 조금 넘게 핸드폰을 쓰다 신형 핸드폰으로 바꾸기도 한다. 빠른 변화 덕에 가지고 물건에 금방 실증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한 가지 있다. 이렇게 기술과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옛것 그대로를 선호하기도 한다. 서울에 연남동, 망원동, 경리단길과 같은 골목상권이 인기를 끄는 건 아마도 골목에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옛 정취에 사람들이 매료되고 변화하지 않는 옛 감성을 느끼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나 역시도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바로 반응하는 세대이면서도 또 한편 어렸을 적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예전의 것에 대한 정취와 향수를 늘 그리워하고 그러한 것들에 매료된다.


여행장소로 파리를 선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나에게 파리는 100여 년 전 그들의 발자국과 제취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가기 전 그들이 즐겨 찾았다는 거리들, 카페, 레스토랑을 찾아보고 그곳을 방문해보는 것이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2017.4월 어느 날>

생 라자르 역[Gare Saint-Lazare]에 와 있다. 생 라자르 역에 찾아온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의 배경이 된 그곳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초기 함께 어울려 지냈던 바티뇰 광장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생 라자르 역을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모네는 역장을 찾아갔다. 상상 속에 들어 있는 기차가 아니라 실제의 기차를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모네는 루앙으로 가는 기차를 삼십 분 연착시킬 것이라고 르누아르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패기 넘치게 역장을 찾아간 모네는 다짜고짜 자기 자신을 '화가 모네’라고 소개했다. 역장은 그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당시에 화가라고 하면 대체로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모네의 인사를 받았다. 모네는 방문 목적을 간단하게 밝혔다. 이 역에 있는 기차를 그리기 위해 왔다고 말이다. 덧붙여서 근처에 있는 노드 역보다 생 라자르 역이 훨씬 더 그림 소재로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도 설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에 절로 웃음이 피어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네의 그림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증명하고 있다. 역장은 파격적으로 화가에게 그림 그릴 기회를 제공했다. 모든 기차를 플랫폼에 세우고 엔진에서 연기와 수증기를 내뿜도록 지시했다. 그림을 위해 승객의 출입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림이 바로 [생 라자르 역: 기차의 도착]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생 라자르 역 시리즈 - 클로드 모네 (인상파 아틀리에)  


모네가 열차를 멈춰 세우고 붓을 들었다는 역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리고 그림에서만 보던 풍경을 실제로  마주하고 있자니, 그 감동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는 역에나 가지고 있는 그 풍경 처럼 기차역은 언제나 분주하다. 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어딘가를 오고 가야 하는 긴 여정 탓인지 지쳐 보이는 누군가와 어디론가 떠남을 준비하는 어떤 이의 설렘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역'이 아닐까. '생 라자르 역' 역시도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기차가 막 생겼을 적의 파리를 상상해 본다. 근대화가 시작되어 사람들은 이제 파리 근교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면 설렘을 안고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표정, 그리고 그사이로 내뿜는 연기와 수증기.. 이를 보고 저 눈에 보이는 연기와 그 생동감을 그대로 그리고자 했던 젊은 모네..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나 그 풍경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모네 그림 속 뿜어 오르는 저 수증기는 마치 뭉개뭉개 솓아오르는 마음 속 설레임과 같은 느낌을 준다.

<모네, 생 라자르역>
< 생 라자르 역>


그렇게 별거 하나 없는 역에 도착해 혼자 감상에 빠져 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바티뇰 광장'을 가기 위해 '생 라자르 역'에서 나와 걷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마음이 쿵하게 내려앉았다. '심쿵이라는 감정이 이럴 때도 생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평범한 파리 거리의 모습이지만 내가 발견한 그 장소는 바로 카유보트 작품 인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그림 속 그 실제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은 사실주의 듯하며 인상주의 적 성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19세기 말 오스만에 의해서 파리 도시는 대 개혁을 이루게 된다. 새롭게 도로가 포장되고, 거리의 건물들은 오스만 양식이라 불리는 건물의 양식들로 지어지게 된다.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풍경이 바로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빛물에 반사되는 모습 등을 통해 그림은 인상주의 작품임을 인식하게 해준다. 또한 사진 기법을 이용하여 우측에 사람이 잘려진 모습, 그림 속 사람들이 중심에 있지 않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들을 좌우측에 배열 함으로써 생동감을 준다.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림은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시대에 어느 거리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해 준다. 그래서 여행 오기전 파리에 오면 이 장소에서 그림과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어 보면 재미있겠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 그곳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 찾아보지 못했었다. 그저 걷다 보면 마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바람으로 길을 걸었다. 하지만 구글맵으로 장소를 찾아보지 않았어도 그곳이 어딘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곳이구나'

그림의 그 모습 그대로 거리는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듯 길을 걷는 현지인들과는 달리 나는 그 거리와, 그 건물들, 그림과 똑같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카유보트가 그 수많은 거리 중 왜 이곳을 그렸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잘 빠져 있는 도로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듯한 저 건물이 꽤나 인상적이다. 마치 '파리 여행은 어때?' 하며 나에게 '파리 여행 잘왔어' 하고 환영 인사를 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오는날>
< 그림과 똑같은 장소, 길거리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든게 같은 모습 그대로이다>


사실 생 라자르 역부터 바티뇰가를 걷고 있는 이 길 위는 곳곳에 보이는 참 오래되어 보이는 음악 가게 말고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그런지 파리 도시 곳곳에 흔히 보이는 관광객 한 명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할 게 없는 이 거리가 나에게는 무척 남다르게 보인다. 

마네와 모네, 카유보트, 바지유 등 일명 마네 패거리들의 어울려 걷던 거리라니..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화 주인공처럼 그저 혼자 감상에 젖어 이 거리를 걷고 있다.


그렇게 걷다 보니 구글맵이 바티뇰 광장에 다다랐음을 알려 준다. 일직선으로 펼쳐진 도로 가운데는 공원이 있다. 도로 양옆에는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마네도 모네도 바지유도 이 거리를 이렇게 걸으며 고민하고, 방황하고, 또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았을까.

<바티뇰 가 풍경>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어려움은 있었을 것이다. 어는 곳에서도 사람이 모여서 관계를 맺으며 삶이란 걸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또 다른 고민과 근심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거리를 그렇게 걷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삶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있는 삶은 특별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결국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이 파라다이이며 그 곳에서의 삶이 정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고갱이 파리도시와 문명에 혐오감을 느껴 타히티 섬으로 떠났지만 결국 그곳도 파라다이스가 아님을 알고 방황했던 것처럼, 그리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배가 고파 졌다. 알아봐 두었던 식당을 가려고 다시 구글맵을 꺼내 들었다. 오페라 극장 앞에 위치한 '카페 드 라페[Café de la Paix]'는 마침 바티뇰 광장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한다기에 다시 발길을 돌렸다. 1862년에 오픈한 이 카페는 무려 150년간 지속된 곳이다. 19세기 말 당시 오페라가 끝나면 많은 예술인들이 이 카페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오래된 느낌은 있지만 구식이고 촌스럽다는 느낌보다는 고풍스럽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오페라를 감상하고 나서 이 곳에 모여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혼자 다시 상상을 해 본다.


< cafe de la paix>
<카페에서 바라본 오페라 극장>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파리, 아마 그것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파리를 사랑하고
이 도시에 대해 로망을 갖는 것은 아닐까..?




여행을 하면서 두꺼운 여행 책과 큰 지도를 가지고 다니며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스마트 폰 하나면 어디를 가야 하는지, 무얼 먹으면 좋을지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넣으면 어디든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인도해 준다. 언어를 몰라도 여행을 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다. 스마트폰 번역기를 돌려 전 세계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기술은 발전하고 그 발전하는 기술에 나 역시도 부흥하며 환호한다.

하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어느 동네의 한 골목, 혹은 어느 거리만의 가지는 예전 그대로의 정취,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훗날 내가 10년 후에나 만약 다시 파리를 여행한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계속 그곳을 지키며 나를 반겨줄 것 같은 어느 카페와 변하지 않는 그 감성들, 그것들은 우리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쩜 우리는 그 변하지 않은 것들을 통해 시대를 넘어, 공간을 뛰어 넘어 우리 모두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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