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 보기로 했다.
(마이너스 순간 1 - 그냥 하는 연애)
어느 순간 연애만, 연애 자체만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결혼이란 결과물을 낼 수 없는 만남은 시간 허비이며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평생 함께 하자는 결혼약속이 연애의 궁극점이라고 여겨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뭐든 함께 나누고 싶고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은 게 당연한 것이기에, 결국 이는 결혼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거라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남자 친구가 생겼어.. 연애 시작했어"
라는 소식에 축하해, 연애해서 좋겠다, 라는 반응보다 이제는,
"결혼 계획은? 결혼은 할 생각이야?"
라는 반응을 듣고 있자면 결혼이 미워지기도 한다. 지금 내 나이에는 이제 막 시작한 관계라도 결혼이 없는 로맨스는 그저 시간 낭비이고 쓸모없게 된 것이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어"
라는 말에는 누가 복사라도 한 듯 뒤따라 오는 한결같은 조언,
"결혼 생각 없는 남자면 그만 만나, 너 만약 그 사람이랑 헤어지게 되면 그다음은 어떡할 거야. 그때 되면 더 나이 먹게 되는데, 그럼 누군가를 만나기가 더 힘들어져."
반박할 수 없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또 반박하기엔 뭔가 내가 아직도 사랑 타령이나 하는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사는 그런 철부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6개월 후에 이별을 하게 될지 모르고, 혹은 또 정말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걸 다 떠나서 단순히 지금이 좋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연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린 걸까...
어쩌면 그저 연애만 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나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났다. 목적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손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이 좋아서 하는 연애, 결혼이라는 산출물을 확실히 내놓지 못하는 불투명한 관계는 지금 내 나이에는 그저 한심한 마이너스 인생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이너스 순간 2 - 여행)
여행도 그 범주에 속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 여행 후 남는 거라 곤 머릿속에 나만 기억하는 추억일 뿐이기에... 결혼약속 없는 연애와 마찬가지처럼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아무리 돈을 아껴가며 여행한다 할지라도, 비행기표며 하루에 들어가는 숙박비는 사실 떠나지 않으면 들지 않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긴 여정 후 내게 남은 건 여행지에서 찍어 온 사진 몇 장뿐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잡히는 어떠한 Output이 없는 것, 여행. 그런데,
항상 결과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은 경험과 행동은 다 쓸모없는 것인 걸까.
누가 들으면 철없이 이상만 좇는 삶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난 마이너스 인생이 더 끌리고 좋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파리 어느 한 노천카페와 그곳에 앉아 마시던 커피, 사실 커피가 유달리 맛있었다기보다는 마치 고유명사 같은 "파리 노천카페"에서 마셨던 그 설렘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 가기 전부터 계획만으로도 두근거리는 마음,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집 앞에서 선 느낌, 미드 속 캐리가 사 먹던 컵케익을 그녀가 가던 가게에 가서 똑같이 사 먹어 보는 짜릿함.
눈에 짠하고 보이는 않는 그저 기억 속에만 의지 하는 것들일 뿐일지라도...
하루에도 끊임없이 목적 없는 행동에 대해 너나없이 내게 조언과 충고를 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하면 안 되는 것들도 많아졌다. 충동적으로 하게 되는 철없는 행동들, 뭔가 해서는 안 되는 말들,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 등등.
그래도 그냥 해본다. 사실 그리 멋지고 쿨 하게, 그 일들을 해 나가지는 못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내적 갈등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할까 하지 말까, 이 나이에 괜찮을까. 그냥 그만둘까 하는 마음의 충동들.. 그래도 그냥 해보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좋고 끌리니깐..''
사실상 뚜렷한 동기 하에 어떠한 결실을 내놓는 일들로 인해 삶에 큰 변화가 오지도 않는다. 그냥 어떤 룰과 인식에 따르는 행동일 뿐인 것이다. 첫째 성과를 목표로 하는 행동, 둘째 그렇지 않은 행동 이 둘 중 무엇이 더 큰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까 라는 질문에 아무도 첫 번째가 답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앞날은 아무도 모르기에. 그러니 그냥 지금 당장 좋은 걸 해보며 살기로 했다. 비록 마이너스 인생이 될지라도.
MIA : Where are we…..? 우리 어디쯤 있는 거지..?
SEBASTIAN : Just wait and see.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 영화 lalaland(라라 랜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