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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Jun 20. 2017

마이너스 인생

그냥 해 보기로 했다. 

(마이너스 순간 1 - 그냥 하는 연애)

어느 순간 연애만, 연애 자체만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결혼이란 결과물을 낼 수 없는 만남은 시간 허비이며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평생 함께 하자는 결혼약속이 연애의 궁극점이라고 여겨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뭐든 함께 나누고 싶고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은 게 당연한 것이기에, 결국 이는 결혼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거라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남자 친구가 생겼어.. 연애 시작했어"

라는 소식에 축하해, 연애해서 좋겠다, 라는 반응보다 이제는,

"결혼 계획은? 결혼은 할 생각이야?"

라는 반응을 듣고 있자면 결혼이 미워지기도 한다. 지금 내 나이에는 이제 막 시작한 관계라도 결혼이 없는 로맨스는 그저 시간 낭비이고 쓸모없게 된 것이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어"

라는 말에는 누가 복사라도 한 듯 뒤따라 오는 한결같은 조언,

"결혼 생각 없는 남자면 그만 만나, 너 만약 그 사람이랑 헤어지게 되면 그다음은 어떡할 거야. 그때 되면 더 나이 먹게 되는데, 그럼 누군가를 만나기가 더 힘들어져."


반박할 수 없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또 반박하기엔 뭔가 내가 아직도 사랑 타령이나 하는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사는 그런 철부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6개월 후에 이별을 하게 될지 모르고, 혹은 또 정말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걸 다 떠나서 단순히 지금이 좋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연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린 걸까... 


어쩌면 그저 연애만 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나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났다. 목적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손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이 좋아서 하는 연애, 결혼이라는 산출물을 확실히 내놓지 못하는 불투명한 관계는 지금 내 나이에는 그저 한심한 마이너스 인생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이너스 순간 2 - 여행)

여행도 그 범주에 속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 여행 후 남는 거라 곤 머릿속에 나만 기억하는 추억일 뿐이기에... 결혼약속 없는 연애와 마찬가지처럼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아무리 돈을 아껴가며 여행한다 할지라도, 비행기표며 하루에 들어가는 숙박비는 사실 떠나지 않으면 들지 않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여정 후 내게 남은 건 여행지에서 찍어 온 사진 몇 장뿐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잡히는 어떠한 Output 없는 것, 여행그런데,


항상 결과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은 경험과 행동은 다 쓸모없는 것인 걸까.



누가 들으면 철없이 이상만 좇는 삶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이너스 인생이  끌리고 좋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파리 어느 한 노천카페와 그곳에 앉아 마시던 커피, 사실 커피가 유달리 맛있었다기보다는 마치 고유명사 같은 "파리 노천카페"에서 마셨던 그 설렘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 가기 전부터 계획만으로도 두근거리는 마음,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집 앞에서 선 느낌, 미드 속 캐리가 사 먹던 컵케익을 그녀가 가던 가게에 가서 똑같이 사 먹어 보는 짜릿함. 

눈에 짠하고 보이는 않는 그저 기억 속에만 의지 하는 것들일 뿐일지라도...


하루에도 끊임없이 목적 없는 행동에 대해 너나없이 내게 조언과 충고를 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하면 안 되는 것들도 많아졌다. 충동적으로 하게 되는 철없는 행동들, 뭔가 해서는 안 되는 말들,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 등등.


그래도 그냥 해본다. 사실 그리 멋지고 쿨 하게,  일들을 해 나가지는 못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내적 갈등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할까 하지 말까,  나이에 괜찮을까. 그냥 그만둘까 하는 마음의 충동들.. 그래도 그냥 해보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좋고 끌리니깐..''

사실상 뚜렷한 동기 하에 어떠한 결실을 내놓는 일들로 인해 삶에 큰 변화가 오지도 않는다. 그냥 어떤 룰과 인식에 따르는 행동일 뿐인 것이다. 첫째 성과를 목표로 하는 행동, 둘째 그렇지 않은 행동 이 둘 중 무엇이 더 큰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까 라는 질문에 아무도 첫 번째가 답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앞날은 아무도 모르기에. 그러니 그냥 지금 당장 좋은 걸 해보며 살기로 했다. 비록 마이너스 인생이 될지라도.


MIA : Where are we…..? 우리 어디쯤 있는 거지..?
SEBASTIAN : Just wait and see.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 영화 lalaland(라라 랜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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