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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Jul 04. 2017

가족의 존재

누구에게나 아픔 한 가지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요즘 흔히들 쓰는 말 중에 "~바보" 란 말이 있다. 나 역시도 그 대열에 합류된다. 나는 조카바보이다. 내 아기가 생기면 어떤 기분 일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아기가 생기면 조카에게 지금 가지는 이 애틋한 감정이 그대로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일단 지금은 그냥 '조카바보' 중에 한 명이다.


작년에 둘째 조카 생일 때 종로에 있는 서울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가족끼리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레스토랑 예약부터 케이크 주문까지 모두 준비해 줬다. 부모님 생신 때도 심지어 내 생일 때도 그렇게 신경 써 가며 식당을 고르고 예약까지 해가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조카 얼굴에 웃음꽃이 필 생각에 그리고 5 생일을 행복하기 바라는 마음에 준비했던 생일 선물이었다.


하루는 핸드폰 속 동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마침 작년 그 아이 생일 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던, 신이 나서 웃음꽃 만개하며 소원을 빌고 초를 불던 동영상을 오랜만에 들춰 보게 되었다. 조카를 만나러 놀러 갔던 차에 그 아이에게 그 영상을 보여줬다.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했는지 아니면 자기 모습을 보는 게 좋았던지(평소에도 본인 사진을 보거나 동영상을 보며 꺄르르륵 웃곤 한다)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영상에 집중을 하며 본다.  모습이 너무 귀여워,

- 우리 올해 6살 생일에도 여기 가서 촛불 불며 생일 파티 하자

하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뜻밖에 대답,

- 아니, 올해 생일에는 다시 홍콩 가자! 홍콩 가고 싶어.

갑자기 홍콩을 가고 싶단 말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에게는가족이 함께 여행했던 홍콩이란 도시가 어떤 기억으로 남았길래 이렇게 또 홍콩을 다시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2015년 5월 어느 날.. >

어느 가족에게나 혹은 누구에게나 아픔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게, 우리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그런 큰 아픔을 겪어 본 적이 없었기에 사실 그 슬픔에 무게에 대해서는 크게 가늠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슬픔이..


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첫째 조카가 쓰러졌다고.. 처음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그냥  조금 아픈 거겠지 하며 현실을 부정했었다. 그러나 전화기를 통해서 오빠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기도해 달라고.. 얼른 낫기를 기도해 달라고... 소리 내어 우는 오빠의 울음소리를 듣는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1.. 2..  달.. 6개월.. 아픔의 시간은 정말 무심히도 흘러갔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재자리를 조금씩 찾아가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만 그 아픔을 느끼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슬픔의 정도를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늘 상 형의 모든 것을 따라 하던 당시 4 아이에게도 형의 부재는 큰 상처이지 않았을까..

어른들이야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며 상처의 표현을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갑자기 쓰러진 형아를 본 이 아이는 어떻게 그 충격을 스스로 삭혔을까..  달간은 엄마와 아빠의 부재도 있었다. 병원에서 형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할머니 곁에서 있어야 했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아마 우리 조카는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더 크게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10월>

그런 저런 진통 속에 1년이라는 시간은 흘렀다. , 새언니, 엄마, 조카와 함께 홍콩여행을 하게 되었다.


홍콩 소호 도착. 홍콩 소호 거리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해가는 서울과는 다르게 8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일부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 있기는 했지만,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페며 가게며 레스토랑들이 다시 보니 어쩐지 반갑게 느껴진다.


사실 여행 떠나기 전에 조금 우려하는 면이 있었다. 홍콩의 습한 더위 속에서 5살 꼬마가 찡찡대면 어쩌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맛없다고 투정은 부리면 어쩌지,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고 울면 어쩌지. 어른 셋과 아이 한 명이 하는 여정이었기에 당연히 관심은 아이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우려였다. 좁디 좁은 홍콩의 길목을 누구보다도 더 잘 걸었고, 샤오롱바오며 베이징덕이며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너무나 잘 먹었으며, 냄새나는 두리안이 재미있다며 하루 종일 두리안 이야기하며 꺄르륵 대느냐고 힘들다고 징징 한번 대지 않았다. 그저 종일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여행이었다.

같은 길을 다른 시각과 생각으로 걸었을 것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펼쳐진 식당들과 그 도로를 생 하고 달리는 택시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엄마, 길거리에 펼쳐진 과일가게에 사로 잡혀 조그마함 몸을 구부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용과며 리치며 망고스틴 하나하나 냄새를 맡고 만져보며 신나 하는 조카,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들과 소소하게 즐비한 카페들을 감상하는 언니.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함께여서 즐겁다는 것. 아마 큰 진통을 겪으며 우리 가족 각자는 가족이라는 둘레가 얼마나 소중 한 것인지, 그리고 지금 함께 하는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 향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5살밖에 안 되는 꼬마도 마음으로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두리안 과일 자체가 신기했던 것보다는 어쩜 두리안 때문에 함께 웃을 수 있던 것이 이 아이에게는 더 큰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17년, 현재...>

6살이 된 조카는 여전히 두리안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서 장난기 어린 미소가 퍼져 나온다.

 아이에겐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둥근달을 볼 때마다, 초에 불이 켜진 걸 볼 때마다 두 손 모아 "형아 얼른 나아" 외치는 아이.


나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그 소중함을 느꼈다. 가족의 존재가 늘 상 당연한 것이기에 감사한 일 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 가끔은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 가며 나는 왜 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불만을 가졌던 철없는 시절도 있었다.  가지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말이다. 하지만 내 기쁨을 나 보다 더 기뻐해 줄,  슬픔을 나 보다 더 슬퍼해줄 가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이 보다 더 큰 선물 있을까


아마 지금 6살밖에 안 된 내 조카는 나 보다 더 먼저 그 가치를 빨리 일깨웠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할 수 있음에 대한 소중함... 그래서 홍콩 하면 홍콩이라는 도시 그 자체 보다,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먼저 더 떠올랐기에 6 생일 선물로 홍콩을 다시 가고 싶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함께 떠날 다음의 행선지를 계획해 본다. 새로운 홍콩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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